▲취재부 고신정 기자

성범죄 의료인에 대한 취업제한을 골자로 하는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의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금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입법공백이 길어지면서 아동·청소년들이 성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높아진 만큼 조속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인데, 서두르다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할까 우려스럽다.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말 '성범죄자 취업제한 제도 개선방안'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해 위헌 결정이 난 아청법 취업제한 조항 개정과 관련해 여론을 모으기 위한 자리다.

앞서 헌법 재판소는 지난해 3월 성범죄 의료인에 대해 일률적으로 10년간 의료기관 개설이나 취업을 제한한 기존 아청법이 위헌에 해당하다고 결정했다. 

성범죄 전과자라는 이유만으로 이들이 다시 성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는 전제하에 일률적으로 취업제한 조치를 내리도록 한 것은, 성범죄 전력자 중 재범 위험성이 없는 자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판단이다. 

이후 정부와 국회는 아청법 개정작업에 돌입했고, 양측의 협의를 거친 새 개정안이 지난 2월 국회 소관위원회인 여성가족위원회를 통과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취업제한 선고 예외 규정이 삭제되면서 당초 헌재가 지적했던 기본권 침해 문제가 그대로 되살아났다는 데 있다. 

당초 정부는 헌재 위헌결정의 취지를 살려 법원이 성범죄로 형을 선고하는 경우라도, 취업을 제한해서는 안 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취업제한 명령을 선고하지 않을 수 있도록 단서조항을 뒀다.

그러나 상임위 심의과정에서 이 같은 단서조항이 삭제되면서, 법원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모든 성범죄자에 대해 예외없이 취업제한 명령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범죄의 내용이 경미하거나 재범의 우려가 없더라도 일정기간 이상의 취업 제한을 피할수 없게 된다는 얘기다. 

소관위로부터 법안을 넘겨받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또한 이 같은 문제점에 공감, 법안의 재검토를 주문하며 법안을 법안심사소위로 내려보냈고, 현재까지 계류되어 있는 상태다.

입법 공백으로 인해 성범죄자가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에 취업할 수 있는 상태에 있고, 이로 인해 아동·청소년이 성범죄에 노출될 위험성이 높아진 만큼 조속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입장에는 공감한다.

다만 그 방법이 범죄의 경중이나 재범 위험성 등 구체적 사정에 대한 판단없이 일률적 취업제한을 통해 성범죄자 모두에 대해 최대 30년까지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라면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죄의 무게에 비해 너무 무거운 낙인을 받거나 과도한 죄값을 치르게 되는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권익보호를 목적으로 소수의 권익을 완전히 배제해서는 안 된다. 설익은 밥은 체한다. 정부와 국회의 합리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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