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머크, 아나세트라핍 상업화 포기…종근당 신약 'CKD-519' 행보 관심 집중

아나세트라핍(anacetrapib)으로 반전을 꿈꿨던 CETP(cholesteryl ester transfer protein) 억제제. 하지만 반전드라마는 없었다.아나세트라핍 개발사인 미국 머크는 11일(현지시각) 아나세트라핍의 상업화를 포기한다고 발표했다.아나세트라핍은 CETP 억제제 계열의 신약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던 상황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 향후 승인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하지만 결국 상업화까지 진행되지 않으면서 현재 종근당에서 개발 중인 CETP 억제제 신약 'CKD-519'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관심이 집중된다.CETP 억제제의 '내리막' 역사…반등 노렸던 '아나세트라핍'CETP 억제제는 LDL-콜레스테롤(LDL-C)을 낮추면서 100% 이상의 HDL-콜레스테롤(HDL-C) 상승 효과를 보여, 개발단계에서부터 차세대 이상지질혈증 치료제 자리를 넘보는 신약으로 주목받았다.하지만 CETP 억제제의 행보는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그동안 개발된 CETP 억제제는 톨세트라핍(torcetrapib), 달세트라핍(dalcetrapib), 에바세트라핍(evacetrapib), 아나세트라핍이 대표적이다.이 중 아나세트라핍을 제외한 세 약물은 효능 불충분 또는 HDL-C를 높이는 효과가 분명하지 않다는 이유로 개발에 종지부를 찍었다.때문에 학계는 아나세트라핍의 임상 결과에 더욱 주목했던 상황. 이에 개발사는 지난 6월 REVEAL 연구 결과를 탑라인으로 우선 공개, 아나세트라핍이 심혈관사건 발생률을 감소시켰다고 발표하면서 학계의 기대를 한층 더 고조시켰다.뚜껑 열어보니…'겨우' 얻어낸 심혈관사건 예방 효과하지만 8월 유럽심장학회 연례학술대회(ESC 2017)에서 REVEAL 연구의 자세한 결과가 공개된 후, 학계는 긍정적인 결과를 '겨우' 얻었다는 평가를 내놨다.최종 결과에 따르면 50세 이상 성인이 스타틴과 아나세트라핍 병용 시 위약군보다 4년 후 심혈관사건 발생 위험이 9% 감소했다.학계에서는 이러한 결과를 혜택이 있다고 봐야 할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미국 Cleveland Clinic의 Steve Nissen 교수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4년간 장기간 추적관찰했음에도 불구하고 1차 종료점 발생 위험이 9% 감소한 점은 아나세트라핍이 혜택이 있다고 단정 짓기엔 작은 수치다"고 지적했다.이에 개발사에서는 REVEAL 연구 결과에 대한 전문가 검토를 진행했고, 아나세트라핍의 상업화를 위한 허가 서류를 제출하지 않겠다고 최종 결정 내리면서 CETP 억제제 신약 개발의 중단을 알렸다.아나세트라핍 유효성 부족·이상반응이 발목 잡아

아나세트라핍의 상업화 중단 이유는 크게 유효성 부족과 이상반응 문제로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REVEAL 연구에 포함된 환자군은 3만 명 이상이지만 4년 동안 주요 관상동맥 사건이 발생한 환자는 아나세트라핍 병용군이 1640명, 위약군이 1803명으로, 두 군간 차이는 163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2년까지 아나세트라핍의 혜택이 나타나지 않았고, 이후부터 통계적인 유의성이 확인됐다. 결국 추적관찰 기간이 길어지면서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어렵게 얻었다는 지적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이와 함께 HDL-C 상승 효과보다는 비HDL-C 감소 효과가 환자 아웃컴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중간 분석 결과에 따르면, HDL-C는 아나세트라핍 병용군에서 104% 상승했고 비HDL-C는 18% 감소했다.

LDL-C가 비HDL-C의 상당 부분에 포함된 만큼 LDL-C가 감소하면서 아나세트라핍의 심혈관사건 예방 효과가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아나세트라핍의 지방조직 축적 문제도 발목을 잡았다. REVEAL 연구 결과 아나세트라핍으로 장기간 치료 시 약물이 지방조직에 축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물은 지방조직에서 일정하게 방출돼야 안정적인 약효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체내에 오랜 기간 축적되고 반감기가 길어진다면 이상반응이 한 번 발생했을 때 증상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위험이 남아 있다.

게다가 아나세트라핍 병용 시 혈압이 다소 상승한 점도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종근당 'CKD-519' 임상2상 중…학계 전망은?

아나세트라핍의 상업화 중단으로 자연스럽게 종근당에서 개발 중인 CETP 억제제 신약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현재 종근당은 CETP 억제제 신약인 'CKD-519'에 대한 임상2상을 호주에서 진행 중이다.

하지만 아나세트라핍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임상 결과와 상업화 포기로 인해, 학계에서는 CKD-519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우선 스타틴 자체의 효과로 인해 신약 효과가 기대만큼 크지 않을 것으로 지적한다. 결국 스타틴 병용 파트너로서 합격점을 받기 위해서는 연구 기간이 길어야 하며, 디자인이 잘 돼야 간신히 심혈관 혜택을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예로 IMPROVE-IT 연구에서 에제티미브와 스타틴 병용요법은 7년째에 이르러서야 스타틴 단독요법군 대비 심혈관사건 발생 상대적 위험도가 6.4%, 절대적 위험도가 2% 감소했다.

고려의대 박창규 교수(구로병원 순환기내과)는 "아나세트라핍이 유효한 결과를 얻을 때까지 4년이 걸린 것으로 보면, CETP 억제제 신약이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최소 4년은 진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비용 문제로 쉽지 않을 것"이라며 "REVEAL 연구에서 CETP 억제제 계열이 처음으로 조금 좋은 결과를 얻었다. 스타틴으로 심혈관사건 발생 위험을 낮춘 이후, 다른 약제로 그 이상의 효과를 얻기는 쉽지 않다"고 제언했다. 

이에 임상2상에서 좋은 결과를 얻더라도 이후 임상은 해외로 아웃소싱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다. 

경상의대 정영훈 교수(창원경상대병원 순환기내과)는 "신약을 개발하고 승인까지 진행하기 위해서는 조 단위의 비용이 투입돼야 하기에 결국 임상3상은 외국 기업에 아웃소싱할 수밖에 없다"면서 "분자구조를 변형하거나 기술 이전 등으로 이전 약물보다 혜택이 커질 수는 있지만, 그 혜택이 어느 정도일지는 확신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CKD-519가 국내 환자를 타깃으로 한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국내 환자는 외국과 달리 고LDL-C혈증·고중성지방(TG)혈증·저HDL-C혈증을 동시에 보이는 복합형 이상지질혈증이 대다수이기에, CETP 억제제가 국내 환자에게는 필요한 치료옵션이라는 것이다.

전남의대 정명호 교수(전남대병원 순환기내과)는 "우리나라는 HDL-C가 낮고 TG가 높은 환자가 많지만 이들은 스타틴만으로 효과를 보기 어렵다. 결국 국내 환자들은 HDL-C와 TG를 같이 조절해야 한다"며 "서양과 달리 국내 환자들은 이상지질혈증 패턴뿐만 아니라 치료에 대한 반응도 다르다. 임상2상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국내에서는 CETP 억제제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예측했다. 

학계가 종근당의 CETP 억제제 신약에 대한 다양한 전망을 내놓는 상황에서, 향후 CKD-519가 어떤 전개를 맞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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