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수탈 겪은 한국…내땅 내집 갈망 뿌리깊게 박혀

▲ 김석주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새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규제 정책에 대한 반응이 엇갈린다.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며 기뻐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너무 규제가 가혹하다"고 반발하거나 "이번에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회의하는 이들도 있다.

집은 무엇이기에 우리는 집, 그리고 집값 때문에 울고 웃는 것일까?

한 연구진이 2000년부터 10년간 30개국의 주거용 부동산 시세를 추적하고,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에 따른 각국 국민의 가치관을 살펴봤다.

그 결과 국민들의 가치관이 경제 성장이나 대출 제도, 세금제도 못지않게 부동산 시세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들이 '생존 중심 가치관'을 가진 나라는 '자기표현 중심 가치관'을 가진 나라에 비해 집값이 크게 오르고 양극화도 심했다.

우리나라 역시 일제 수탈에 이어 한국전쟁 전후 공산당의 토지 몰수와 분배 등을 경험하면서, '내 땅'과 '내 집'에 대한 갈망이 내면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생존 중심 가치관이 장악한 한국사회는 부동산 가격 상승과 양극화의 좋은 배경이 돼왔다.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경제학의 '불확실성'은 심리학의 '불안'과 같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부동산 시장에서는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과 잃지 않으려는 공포가 요동친다. 시세가 오르면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환상이 퍼지고, 사지 않는 사람은 바보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생긴다.

집을 사서 돈을 번 사람들에 대한 질투도 느낀다. 도박 중독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심리다. 반대로 시세가 하락하기 시작하면 내 재산, 즉 내 생존이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무엇도 믿을 수 없고 자기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지며, 수치와 분노, 절망이 교차하는 심리적 외상 이후 상태가 된다. 부동산 시세가 오르든 내리든 정서적 불안을 겪게 되는 것이다.

부동산 투자 실패로 우울증상 겪는 경우도 무시못해

흥미롭게도 영어에서 '경제적 불황'과 '우울증'은 같은 단어(depression)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환자 중 부동산 투자 실패로 인한 우울증상을 호소하는 이들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부동산에 투자해 5만 달러의 손실을 볼 때마다 우울증 가능성이 8% 증가한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자 미국의 우울증 환자가 50% 급증하고, 알코올 의존과 자살 위험도가 늘었다는 보고도 있다. 손실을 입지 않았는데도 경제적 손실이 생길지 모른다며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도 정신과적 문제가 증가했다고 한다.

땅을 '토지'로 여기면 생명력을 잃고, 집을 '주택'으로만 보면 치유력을 잃는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라는 노랫말처럼, 집은 돈과 생존을 위한 곳이 아니라 자기실현과 휴식을 위한 곳이어야 한다.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누군가는 혜택을 받을 것이고, 누군가는 손해를 보게 될 수밖에 없다.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고 우울하다면 먼저 차분하게 자기 처지를 돌아볼 것을 권한다.

손실에 집착하지 말고, 그 손실이 인생 전체를 뒤흔들만한 것인지 숙고했으면 한다.

돈이 없어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즐겁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자. 당장 마음을 달래기 위해 원망할 대상을 찾고 가족과 자신을 탓하지는 말자.

가족에 기대고, 적절한 수준에서 자기 위로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도 마음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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