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정 기자

비급여 전면 급여화를 핵심으로 하는 '문재인 케어' 대응방안을 놓고 의료계가 또 다시 삐걱대고 있다. 보다 나은 대책을 찾기 위한 진통이라면 다행일텐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우려스럽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건보 보장성 강화 대응책 마련을 위한 비상대책'특별'위원회 구성에 돌입했다. 통상의 비상대책위원회와 달리 '특별'이라는 별칭이 붙은데는 사연이 있다. 또 다른 의협 비대위 출범이 이미 예고되어 있는 까닭이다.

사정은 이렇다. 

문재인 케어 발표 후 의료계 내부 여론이 악화되자, 16개 시도의사회장단은 지난 12일 전국광역시도의사협회장협의회 회의를 열고, 의협에 문재인 케어 대응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건의했다.

의견을 접수한 의협 집행부는 16일 상임이사회를 열어 비대위 구성을 의결하고, 같은 날 이 같은 사실을 공식화했다. 의협 2인과 대의원회 2인, 시도의사회 2인, 병원협회 2인, 의학회 2인, 개원의협의회 2인, 여자의사회 1인, 전공의협의회 2인, 공보의협의회 1인 등 구체적인 구성안까지 내놨다.

상황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비대위 구성에 관한 최종 결정권은 의협 대의원회가 가지고 있다. 의협 대의원회 의결을 거치지 못한 해당 비대위는, 공식적인 의협 비대위로서의 지위를 갖지 못한다는 의미다. 

의협 대의원회는 19일 긴급 운영위원회를 열어, 오는 9월 16일 임시 대의원총회를 개최해 문재인 케어 대응 비대위 구성 등의 관한 건을 공식 논의키로 하겠다고 밝혔다. 집행부가 만든 비대위를 대의원총회가 인정하는 단순 절차상의 자리냐면, 돌아가는 상황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의협 대의원회 임수흠 의장은 22일 기자단감회를 갖고 의협 집행부가 만든 비대위는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은 조직으로 비대위라는 명칭을 사용해서는 안되며, 필요하다면 특별위원회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단순한 정관 해석이라기보다는 집행부가 구성한 비대위를, 의협 대의원회가 그대로 인정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미 예고된대로 내달 임시총회에서 대의원회 차원의 또 다른, 공식 비대위 탄생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의협 추무진 집행부는 이런 대의원회의 분위기에 각을 세우고 있다. 임 의장을 해석을 받아들여 기존 비대위에 '특별'자를 붙이돼, 사안의 시급성을 감안해 비상대책 특위 구성과 운영을 그대로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의협 산하에 비대위와 비대위특위가 공존하는 상황이 된다. 여기에 지난 26일 광화문 집회를 벌였던 '비상연석회의'까지 합하면, 의료계 내부에 문재인케어 대응을 위한 '비상'조직이 무려 3개가 된다.

누가 진짜 의료계의 대표인지, 누구의 이야기가 공신력이 있는지, 누가 진짜 대화의 상대인지 헛갈릴만하다. 

그러는 사이 협상의 상대인 정부는 문재인케어 이행을 위한 준비작업을 착착 이행하고 있다. 복지부 내에 TF를 꾸려 구심점을 분명히했고, 연일 보장성 강화 이행 계획을 내놓으며 여론을 형성해 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비급여 전면 급여화를 골자로 하는 이번 보장성 계획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의료계는 물론 국민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전세는 의료계에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70%대를 유지하며 고공행진을 하고 있고, 국민 대다수가 정부의 정책 방향에 공감하고 지지를 보내고 있다. 

과거 원격의료 저지 투쟁에서 힘을 보탰던 야당은 이제 여당이 됐고, 한때 동지였던 시민사회도 이번엔 의료계와 대척점에 서 있다. 고립무원의 의료계로서는 한 몸처럼 붙어, 하나의 목소리를 내도 이기기 쉽지 않은 싸움이다. 

지금은 책임론을 따지며 분열하거나, 주도권 다툼으로 시간을 버릴 때가 아니다. 지금 이 시점, 정말 비상대책이 필요한 곳은 회원과 국민의 뜻은 헤아리지 못한 채 좌고우면하는 의협지도층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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