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 "맞는 말이지만 당장은 글쎄" ...응급의학과 내부에서도 다른 목소리

 

중앙에 집중된 응급의료 시스템을 '지방자치 응급의료'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료계와 정부 모두 대전제에는 찬성이지만 세부 내용에서는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어 갈등이 예상된다. 

현재 응급의료체계는 중앙 정부에 모든 것이 집중돼 있는 상태다. 응급의료 기금 예산 편성과 운영을 독점하고 있는 것은 물론 응급의료기관 평가와 권역응급의료센터, 권역외상센터 지정도 중앙정부가 독점하고 있다. 중앙 정부가 예산과 평가 등 모든 권한을 갖고 있어 지방 정부의 역할은 미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난해 발생한 전북대병원 중증소아외상환자 사망사건 등 지방 응급의료 체계가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사회적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예상치 않은 사고와 응급질환에 대비하려면 적정 시간 내, 적정 치료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지방으로 응급의료의 권한과 책임을 이양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예산·운영권 모두 움켜쥔 중앙정부

지방 자치 응급의료체계 구축이라는 주제를 놓고 보건복지부, 응급의학과 등 모두 동의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정작 속내를 들여다보면 조금 복잡하다. 복지부도 분명 가야할 길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당장 시행할 수 없는 속내가 있고, 응급의학과 의사들도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응급의학과 한 교수는 응급의료 패러다임을 지방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사들을 복지부, 서울대병원, 서울대병원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했다. 복지부는 생각이 복잡할 것이라 했다. 전북에서 발생한 소아 외상환자 사망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지방자치 응급의료 체계를 빠르게 구축해야 하는 것은 명제임에 틀림없다. 실제 복지부도 외부적으로는 지방자치 응급의료를 구축해야 한다고 표명하고 있다.   

지난 7월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이 주최한 '응급관리체계의 분권화 방안' 토론회에서 복지부 응급의료과 이선식 사무관은 "응급의료에서 지역화 논의는 매우 중요하다"며 "지역에서 어떤 것을 더 잘할 수 있는지 분석해 명확하게 역할을 나눠야 한다"며 지방자치 응급의료를 강조했다.

다만 여운을 남겼다. 당장 시행해야 하지만 곤란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 사무관은 "응급의료기관 지정이나 평가 문제는 쉬운 결정이 아니다. 의료기관이 많은 서울, 경기 등은 지자체가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만 의료기관이 적은 곳은  해당 지자체가 관리감독하기 어렵다"며 "지역 불균형 문제는 지자체에 자율성과 권한을 준다고 해결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 ⓒ김민수 기자

복지부의 이 같은 의견에 대해 응급의학 전문가는 당연한 반응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중앙 부처의 힘은 예산을 쥐고 있어서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지방정부에 나눠주고 싶은 중앙정부는 없을 것"이라며 "복지부도 예산 권한을 갖고 싶어할 것이다. 지방자치 응급의료는 가야 할 방향이지만 놓기 싫다는 반응으로 읽어야 한다"고 분석했다.  

적극 행보 보이는 서울대병원…곱지 않은 시선도

두 번째 그룹으로 분류되는 곳은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다. 최근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국가과제 심포지엄을 주제로 '응급관리체계의 분권화 방안' 토론회 등을 개최하면서 지방자치 응급의학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응급의학과 신상도 교수는 중앙정부는 국가 응급의료 중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시도 응급의료 평가와 기술 지원, 소아응급의료체계 등 특수 목적 응급의료를 개발하는 것을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중앙 정부가 응급의료 기금 등 예산 편성과 운영을 독점하고 있다. 게다가 응급의료 기관 등의 평가와 권역응급의료센터와 권역외상센터 지정도 독점하고 있다"며 "시도정부가 직접 시도 응급의료 중장기 계획을 수립해야 하고 특히 응급의료 기금 예산 평선 권한을 지방 정부가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예산도 지방정부가 편성하고 책임도 지게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새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네 번째 국정목표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이다. 따라서 응급의료 패러다임도 지방자치 시대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의 이러한 움직임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관련 심포지엄을 계속 개최하는 것도 지방자치 응급의료 체계 구축과 관련된 연구용역을 정부로부터 맡기 위한 포석이라고 꼬집는다.

응급의학과 한 교수는 "지금까지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가 새로운 트렌드를 소개하고 이를 정부로부터 용역을 맡아 연구를 하는 일을 여러 차례 했다. 하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였다"며 "이번에는 지방자치 응급의료 체계 구축이라는 올바른 방향을 잡아 다행이지만 결국 연구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고 독점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병원 전 프로세스부터 바로잡아야”

지방자치 응급의료도 중요하지만 응급환자 병원 전 프로세스를 먼저 돌아보고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권한, 예산 등을 지방에 준다고 지방자치 응급의료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환자를 병원에서 치료하는 것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환자 발생, 신고, 병원 이송 등 병원 전 프로세스"라며 "응급환자 생존율이 낮다면 지역마다 원인과 해결책이 다르다. 응급환자 치료의 어떤 지점에서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고 분석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어떤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파악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급대와 병원의 데이터가 이어지고, 모든 연구자에게 공개돼야 한다. 또 지역마다 실정이 다르기 때문에 연구가 지역별로 행해져야 한다"며 "연구를 실행하고 집행할 각 지역의 의사조직 즉 메디칼 컨트롤 협의회가 구축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문제는 구급대와 병원의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외국은 미가공 데이터(raw data)까지 공개하고 있다. 현재 병원 전 데이터는 질병관리본부와 소방방재청이 갖고 있는데, 정보 공개 청구를 해도 조사 목적 이외에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지방에 있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데이터를 갖고 분석해야 응급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데이터를 분석하면 취약한 곳을 알 수 있다"며 "데이터를 분석하려면 조직, 돈, 지자체에 권고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병원 전 단계를 강조하는 응급의학과 교수들은 응급의료의 지역화를 위해 먼저 병원 전 단계의 트리아지(응급환자 분류표)를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인 KTAS(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 방식으로 통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직접 의료지도를 담당하는 기존의 지도의사 협의회와 별도로, 간접 의료지도를 담당할 메디칼 컨트롤 협의회를 광역 및 기초 지자체에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각 질병에 대해 각 병원의 등급을 매기는 체계를 구축하고, 이송병원의 선정과 관련한 프로토콜을 중앙에서 작성해, 각 지역의 메디칼 컨트롤 협의회가 해당 지역의 프로토콜을 작성하는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방의 모 교수는 "일반인 상담 및 병원 간 전원을 담당할, 119와 별도의 신고전화 체계를 구축해 프로토콜로 대응할 수 없는 문제들을 실시간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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