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ICD 삽입률, 유럽 대비 28분의 1…"돌연사 1차 예방 위해 ICD 삽입한 환자 극소수"

2010년대 초 운동선수 신영록과 임수혁 선수가 부정맥에 의한 심장마비로 경기 도중 쓰러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이를 계기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인한 심장돌연사(sudden cardiac death)를 예방하는 방법에 대중의 관심이 쏠렸고, 심장기능을 회복시키는 삽입형 제세동기(implantable cardioverter defibrillator, ICD)의 중요성이 대두됐다.그런데 지난해와 올해 ICD의 유용성에 의문을 제기한 연구가 NEJM에 실리면서 ICD의 실효성에 대한 학계의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이같은 주장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연구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ICD의 가치가 저평가됐다고 입을 모은다.이에 국내 임상에서 ICD 시술 현황과 함께 ICD가 가지는 임상적 유용성 등에 대해 최근 논란이 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분석했다.ICD, 심부전 및 좌심실 수축기능 감소한 환자에게 돌연사 예방 목적으로 권고ICD는 심장리듬을 감시하면서 치명적인 심실성 부정맥이 나타났을 때 전기충격을 주는 등의 방법으로 불안정한 심장리듬을 정상으로 돌리는 비약물적 치료법이다. 심장돌연사가 있었지만 소생했거나 그 위험이 높은 환자에게 체내에 이식한다.본래 ICD는 심실세동 등에 의한 심정지 환자나 구조적 심질환이 있는 심실빈맥 환자가 심장돌연사를 겪은 후 심폐소생술이 잘 이뤄져 회복됐을 때 2차 예방 목적으로 삽입했다.이후 2013년 미국심장병학회재단(ACCF)/미국심장협회(AHA) 가이드라인과 2016년 유럽심장학회(ESC) 가이드라인에서는 심부전 및 좌심실 수축기능이 감소한 환자에게 ICD를 1차 예방 목적으로 권고하고 있으며, 국내 진료지침도 이를 수용하고 있다.2016년 대한심장학회 심부전연구회에서 발표한 만성심부전 진료지침에서는 비허혈성 심부전 또는 심근경색 후 40일이 경과된 허혈성 심부전 환자가 △좌심실박출률이 35% 이하이고 △적절한 약물치료에도 불구하고 NYHA(뉴욕심장학회) 기능등급이 Ⅱ~Ⅲ이며 △1년 이상 생존 가능하다면 사망률을 낮추기 위한 1차 예방 목적으로 ICD를 사용하도록 명시했다(Class I, Level of Evidence A).이와 함께 심근경색 후 40일이 경과된 허혈성 심부전 환자가 △좌심실박출률이 30% 이하이고 △적절한 약물치료에도 불구하고 NYHA 기능등급이 Ⅰ이며 △1년 이상 생존 가능한 경우 사망률을 감소시키기 위한 1차 예방 목적으로 ICD를 삽입할 것을 제시했다(I, C).ICD는 이러한 진료지침을 토대로 국내 보험급여가 적용돼, 환자들은 심장돌연사 위험을 낮추면서 생존을 증가시켰다는 근거가 있는 경우 ICD 시행 시 비용의 5%만 부담하면 된다.국내 ICD 삽입률, 유럽 평균 28분의 1 수준
▲ 보스톤사이언티픽코리아의 ICD인 오토젠(Autogen ICD)

문제는 이러한 권고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심장돌연사를 1차적으로 예방하기 위해 ICD를 삽입하는 환자가 극소수라는 점이다.

기기를 체내에 삽입한다는 부담과 함께 약물치료와 달리 증상 개선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환자가 느끼는 ICD 유용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심장돌연사를 겪었던 환자들은 2차 예방 목적으로 ICD 시술을 받았을 때 치료에 따른 안도감 등을 느끼는 점과 다르다. 

가톨릭의대 김성환 교수(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는 "ICD 삽입률은 100만명을 기준으로 독일이 264명, 유럽 평균이 140명인 반면, 우리나라는 5명으로 유럽의 28분의 1 수준이다. 유럽 평균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며 "ICD 삽입률이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대부분 2차 예방에서 늘었다. 1차 예방 목적으로 ICD를 이식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비허혈성 심근병증 환자에게 ICD를 삽입하는 경우 문제가 더 심각하다. 허혈성 심근병증 환자에게 ICD 이식 시 치료 혜택이 크다는 점은 정설로 자리 잡았지만, 비허혈성 심근병증 환자에게 ICD를 삽입했을 때 심장돌연사를 1차적으로 예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학계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일부 무작위 대조군 연구와 메타분석에서는 비허혈성 심근병증 환자에게 ICD 이식에 따른 사망률 감소를 보고하고 있음에도, ICD의 예방 효과에 대한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국내 임상에서 시행 빈도는 적은 실정이다.

DANISH 연구, ICD 유용성에 대한 문제 제기…한계점은?

심장돌연사에 대한 1차 예방으로서 ICD의 의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대표적 연구가 지난해 발표된 DANISH 연구다(N Engl J Med 2016;375:1221-1230).

연구는 표준 심부전 치료를 받고 있는 비허혈성 심부전 환자에서 ICD 효과를 분석한 첫 무작위 대조군 연구로, ICD 삽입군과 ICD를 삽입하지 않은 일반적인 치료군에서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 위험을 비교했다. 

5.6년(중앙값)간 추적관찰한 결과,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 위험은 두 군간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이에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덴마크 오르후스대학 Steen Dalby Kristensen 교수는 지난해 열린 유럽심장학회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연구를 계기로 가이드라인에 변화가 생길 수 있으며, 향후 비허혈성 심부전 환자에게 ICD를 1차 예방 목적으로 삽입해야 하는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나 결과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심장돌연사 위험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결과에 의하면 심장돌연사 위험은 ICD 삽입군이 일반적인 치료군보다 50% 더 낮았다(HR 0.50; P=0.005).

즉 환자들은 부정맥, 암, 심부전 악화 등으로 사망해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 위험에서 두 군간 차이가 없었으며, 심장돌연사를 막기 위해서는 ICD가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는 ICD 삽입으로 감염, 출혈, 시술 자체의 부작용 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하지만, DANISH 연구 결과에서도 기구감염률은 ICD 삽입군과 일반적인 치료군간에 의미 있는 차이가 없었다(4.9% vs 3.6%; P=0.29).

아울러 영국 글래스고 의대 John McMurray 교수는 지난달 NEJM에 실린 논문을 통해 박출률 저하 심부전 환자가 효과적인 약물치료만으로 질환을 관리하더라도 돌연사 위험을 낮출 수 있었다며, ICD가 이들에게 혜택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역설했다(N Engl J Med 2017;377(1):41-51).  

하지만 해당 연구에서는 ICD를 이식해야 하는 고위험군이 아닌 저위험군을 대상으로 분석했다는 한계점이 있다. 다시 말해 아직까지 심장돌연사 고위험군은 ICD 삽입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돌연사 1차 예방법, ICD 외에 대안 없다"

국내 전문가들은 심장돌연사를 막는 1차 예방법으로 ICD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심실세동 또는 심실빈맥 등을 치료해 심장돌연사를 예방한 약물이 없을뿐더러, 심부전 치료제 등을 복용했음에도 심장기능이 개선되지 않고 문제가 생겨 돌연사한다면 더이상 손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심장돌연사를 예방하기 위한 치료전략의 효과가 없었다는 것은 환자가 다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사망했다는 의미다. 아직 심장돌연사 1차 예방법은 ICD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며 "국내 환자들은 ICD 삽입에 대한 부담이 크지만 기기 크기가 작아 삽입 후 느끼는 불편함이 적고, 기술 발전으로 과거와 달리 ICD 이식 후 MRI 촬영을 받을 수 있는 등 일상생활에 큰 제약이 없다. 국내에서 ICD 시술이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는 만큼 지금보다 더 늘어야 한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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