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부 양영구 기자

“원장 선생님도 못보고 간호조무사한테 윙크만 하고 이동해야 할까요”

회사의 실적 압박으로 과한 횟수의 콜(영업사원이 병의원을 방문하는 횟수를 일컫는 말)을 찍어야 하는 삶을 살고 있는 한 제약사 영맨의 하소연이다.

잘나가는 영업왕들이야 승승장구한다지만, 대다수 영업사원들은 회사의 타이트한 규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A제약사는 1일 기준 18~20건의 GPS 콜을 한 달 동안 평균적으로 찍어야 업무 부진자라는 낙인(?)을 피할 수 있다. 

최근 들어 20분 2콜에서 30분 2콜로 그나마 규정이 완화됐다지만, 2시간 이상 콜이 없을 때면 지점장, 본부장, 이사 등에게 소위 "얘 콜 안 찍고 놀고 있다"라는 취지의 알람이 스마트 워치로 전달된다고.  

기자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영맨이 자신의 담당 지역 원장을 만나기 위해 이동하는 시간만 어림잡아 계산할 때 15분 간격으로 1콜을 찍는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기다 자신에게 진료를 받고자 기다리고 있는 환자가 있다면, 과연 어느 의사가 환자를 제쳐두고 영맨부터 만나 줄까?

이런 상황은 해당 제약사만의 일은 아니다. 

B제약사는 하루 20~22콜을 찍어야 상급자에게 욕 안 먹는 부하직원이 되고, 그나마 규정이 빠듯하지 않다고 알려진 C제약사도 하루 15콜을 찍어야 한다. 물론 한 달에 한 거래처에서 4콜 이상을 찍으면 안 된다거나, 콜을 찍어야 하는 품목을 정해놓은 건 덤이다.

이쯤 되면 영맨은 의사를 상대로 자사의 제품을 영업하는 게 아니라 회사에 보고하기 위한 콜을 찍기 위해 담당 병의원을 돌며 순회공연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물론 콜 관리가 영업 생산성, 즉 매출을 올리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제약 영업 방식이 과거 관계와 결과 중심에서 전략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그동안 제약영업은 전문가를 대상으로 짧은 시간 안에 이뤄져야 하고 수많은 영업사원과 경쟁을 벌어야 하기에 성과 위주의 영업 방식이 주를 이뤘지만, 이 같은 영업방식은 결국 영업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분석이 있다. 

특히 영맨을 상대로 무리한 콜 규정을 적용하는건 사기를 저하시켜 비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올 게 뻔하다. 콜 수를 채우기 위한 영업에 급급해 친분관계가 있는 병원을 중심으로 영업을 하거나 소극적인 목표를 설정해 매출을 다음 달로 미루는 등 낮은 효율성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국내사 영업사원은 “콜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찍고 쉬는 거죠. 중요한 건 ‘임팩트 콜’인데 왜 숫자가 중요할까요. 결국에는 좋아하는 원장님이 저를 움직이게 만들겠지요”라고 말한다.

콜 수에 얽매여 진짜 영업을 할 수 없게 만드는 환경을 만드는 '주객전도'는 없어야겠다. 

양 보다는 질이라는 명언을 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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