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 유전질환, 희귀난치병 치료 기대 ... 효과 측정 방법 없고, 인간 배아 윤리문제 남아

 

최근 국내 연구팀이 인간배아에서 비후성심근증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로 사용해 교정하는 데 성공하면서 논쟁이 격렬해지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 교정연구단 김진수 단장팀이 인간배아 유전자 교정을 통해 비후성 심근증 변이 유전자가 자녀에게 유전되지 않을 확률을 자연상태(부모 중 한 명이 변이 유전자 보유 시, 유전될 확률 50%)의 50%에서 72.4%로 높였다. 이 연구는 8월 3일 국제적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되면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연구에서 눈여겨볼 점은 국내에서 배아를 이용한 실험을 할 수 없어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 대학(OHSU) 미탈리포프 교수팀이 진행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인간 배아와 태아의 유전자 치료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금지돼 있다. 이로 인해 연구팀은 배아 실험에 사용할 유전자가위를 제작해 제공만 하고, 정작 인간배아에 유전자를 교정하는 실험은 미국에서 수행했다.

유전자 가위란?  

크리스퍼 유전자가위(CRISPR Cas9)란 박테리아의 면역체계에서 유래한 DNA 절단효소로 특정 유전자를 없애거나 더할 수 있고, 다른 염기서열로 교체할 수 있다. 유전자 가위는 유전질환을 치료하는 유전자치료에도 사용할 수 있다. 유자자 가위 1세대는 2003년 개발된 '징크핑거(zinc finger)'다. 이후 '탈렌(Talen)'이라는 2세대 유전자 가위가 등장했다. 1세대와 2세대 유전자 가위는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어 시장에서 자리 잡지 못했다. 그러다 3세대 유전자 가위 크리스퍼가 나타난 것이다.내용을 입력하세요.

김 단장이 연구에서 사용한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위협적인 이유는 편집이 자유롭다는 점 때문이다. 그 능력을 이미 에이즈 치료에서 보였다. 에이즈는 HIV에 감염돼 나타나는데, HIV는 CCR5라는 수용체를 통해 인간 세포에 들어간다. 이에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CCR5 유전자의 일부를 잘라 HIV가 수용체에 결합하지 못하도록 막는 방식으로 치료를 시도했다. 국내에선 2015년 연세의대 약리학교실 김형범 교수팀이 유전자 가위로 RhD+ 혈액형을 RhD- 형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 바 있다.  

크리스퍼는 유전자를 넣을 수도 있다. 붙이고 싶은 DNA 조각을 같이 넣어주면 된다. 2015년 미국국립보건원(NIH)은 크리스퍼 기술을 이용해 암세포를 죽이는 살아있는 차세대 약물인 'CAR'를 세포에 도입하는 임상을 승인한 바 있다. 유전자 서열을 뒤집을 수도 있다. 혈우병 발병 원인으로 'FVIII' 유전자 부위가 뒤집힌 경우가 있다. CRISPR 기술을 이용하여 유전자를 다시 정상적으로 돌려놔 혈우병을 치료하겠다는 것이다. 

"인간배아 연구 허용해야" vs "측정할 수 없어 아직은 위험" 

사회 분위기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를 암, 희귀질환, 에이즈 등을 치료하는데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문제는 유전자 가위를 인간배아 때부터 사용하느냐다. 국내에서 황우석 사태 이후 배아를 활용한 연구는 오랫동안 금기어에 가까웠다. 그런데 김 단장팀의 연구가 다시 배아 연구 찬반 논쟁에 불을 붙이고 있다. 

김 단장은 유전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들과 이들이 출산할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인간배아 연구를 허용해야 한다고 강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 열린 연구성과 브리핑에서 김 단장은 "연구를 지금처럼 막으면 앞으로 기술축적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 외국에 나가 배아 유전자 수술을 받아야 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토로했다. 

▲ 주요 국가별 배아 연구 허용 여부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유전자 가위가 정확하게 유전자를 제거했는지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의도하지 않은 부분을 자를 수 도 있고, 잘못 절단하면 기존에 없던 질병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유전자 가위 편집 메커니즘을 알아낸 다우드나 교수조차도 안전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인간 배아와 관련된 윤리문제도 쉽지 않은 문제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유전질환을 안고 태어나는 것보다 배아 상태에서 유전자 가위를 사용해 유전질환을 없애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반대하는 측은 인간배아를 생명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유전자를 편집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이다. 유전자를 넣고 빼는 등의 맞춤형 아기를 우려한다. 

인간배아 사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없다. 세계 각국이 각기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어서다. 영국은 인간배아를 대상으로 하는 DNA 교정연구를 승인했다. DNA 교정연구에는 크리스퍼 기술을 사용하고 있고, 배아의 유전자를 교정해 배아의 성장과 착상을 연구하고 있다.

특별한 규제가 없어 인간배아 연구가 가장 활발한 국가는 중국이다. 2015년 크리스퍼 가위를 이용해 배아 유전자를 변형해 얻은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일본도 우리나라보다 규제가 느슨한 편이다. 2016년 5월 유전자 교정을 통해 인간 수정란을 조작하는 행위를 기초연구에 한해 허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도 유전자 가위기술에 대한 별도의 가이드라인은 확립되지 않은 실정이다. Sangamo Therapeutics사 등 선두기업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생물학적 제제 평가연구센터 (CBER : Center for Biologics and Research)에서 규정한 유전자치료제 규제 가이드라인에 따라 임상에 진입한 상태다. 

▲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시장 규모

여러 논쟁이 있지만 시장은 성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시장은 2022년까지 지금보다 10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전질환이나 난치성질환 등에서 활용될 것이고, 유전체 기반의 맞춤의료가 발달됨에 따라 인간줄기세포 분야에서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내다본다. 기업 투자도 이어지고 있다. 인텔리아 테라퓨틱스가 노바티스로부터 1500만불(약 170억원), 스위스 크리스퍼 테라퓨틱스사가 독일 바이엘로부터 3억 유로 (약 3800억원)를 투자 받은 바 있다. 이들 회사들은 모두 유전자 가위기술을 이용한 치료제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국내 기업으로는 툴젠이 있다. 지난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원천기술에 대한 국낸 특허를 2건 등록하기도 했다. 현재 크리스퍼 원천기술에 대한 특허분쟁이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어 미국 크리스퍼 관련 기업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 우위를 점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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