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품 주기식 교류는 일회성…자생력 키워줘야

"북한의 보건의료는 지난 10년에 걸친 인도주의적 원조로 많은 개선이 있었으며, 영양상태도 좋아졌다. 말라리아·결핵 등 예방접종은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시설·의료기기·의약품 등이 부족하고 국제기준에 못미치는 환경탓에 인프라를 구축할 수 없어 여전히 국제사회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 초청으로 방한 중인 아이길 소렌슨(Eigil Sorensen) 세계보건기구(WHO) 주북한 대표부 대표는 지난달 29일 보건복지부에서 기자브리핑을 통해 이같은 상황을 전하고 이젠 북한 보건의료를 국제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중장기적인 지원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심각한 부족사태를 보이는 의약품·의료기기 등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제공받은 물품이나 장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도록 교육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선을 주면 한번 배불리 먹을 수 있지만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다며, 식량·의약품 등 물품 지원과 함께 북한의 보건 인력을 교육시키고 의료기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시기가 됐다고 했다.

의학지식 높으나 경험 부족

 우리 보건의료계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대병원서 대북 창구역할을 맡아 여러차례 평양을 방문한 이건송 기사장(대한의공협회장)은 북한 의사는 의학에 대한 지식 수준은 높으나 시설·의료기기·의약품 등의 부족으로 경험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어서, 조금만 도와주면 훌륭한 의사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덧붙여 열악한 환경에서도 심장수술을 하고 한국서 제공해준 CT를 스스로 보수유지하는 것을 볼때 경제적 문제만 해결된다면 의학수준은 곧 국제적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문옥륜 서울대보건대학원 교수는 `북한의 보건의료제도 욕구 현황과 전망`자료에서 통일에 대비한 준비로 북한 의료인에 대한 의료기술 훈련지원, 용어통일 운동이나 국어순화운동을 전개하여 두 제도간 동질성을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반도 통일이 언제 될지 현재는 미지수지만 예기치 않게 다가올 수도 있어 통일한국의 보건의료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1997년 이후 교류 확대

 지구촌 유일의 분단국가인 남·북한은 지난 1991년 유엔 동시가입 이후, 문화·경제·스포츠·교통건설 분야와 함께 보건의료도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용천폭발 사고 당시 보건의료지원은 혈육보다 더뜨거운 동포애를 보이며 지원액이 3배규모로 크게 확대됐다.
 북한과의 보건의료협력사업은 1997년부터 본격화됐으며, 한민족복지재단 유진벨재단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남북어린이어깨동무 굿네이버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같은 민간단체들을 중심으로 정치적 변수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히 증가돼 왔다. 대한의사협회는 북한병원 현대화 사업 추진과 의료지원 활동을 펼쳤고, 서울대병원과 나눔인터내셔널도 북한병원 현대화사업을 추진중인 가운데, 이달중 의료협력센터가 완공예정에 있다. 또 분당서울대병원 성형외과 백롱민 교수는 북한어린이 얼굴기형 수술사업을 계획하고 있어 앞으로 크고 작은 교류가 많아질 전망이다.
 통일부 발표(2005년 5월)에 따르면 2000~2004년 민간단체의 보건의료분야 대북지원액은 남북협력기금 지원액을 제외하고 대한의사협회 2억9300만원, 대한결핵협회 2억6900만원, 한국건강관리협회 17억500만원,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 39억7400만원 등 13개 단체에서 1818억원에 달한다.
 이처럼 많은 교류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한나라당 안명옥 의원은 최근 `남북보건의료의 교류 및 협력증진에 관합 법률` 공청회를 열고 향후 독립된 법을 기반으로 효과적인 협력 가능성과 통일을 대비한 보건의료체계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 의료계는 물론 정치권에도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외부 지원 크게 의존

 북한의 보건의료체계는 보건의료시설을 국가가 소유·관리·운영하고 무료로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앙집권적 시스템. 기본골격은 무상치료제, 호담당제(의사담당구역제), 예방의학적 방침, 진단은 신의학·치료는 고려의학, 농촌병원화 등으로 짜여있다.
 그러나 오랜 정치적 고립으로 보건의료의 많은 부분에서 국제 수준에 미달하고, 우수한 인적자원을 가졌음에도 현대의료에 대한 경험부족으로 인해 결국 국제적십자연맹, 세계보건기구, 유니세프, 한국 등의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0년간 국제사회 전체 지원액의 절반가량을 지원했고 이중 보건의료 분야는 11.4%였다. 지원은 의약품 59.6%, 의료장비 34.8%, 전염병 퇴치사업 5.6% 등으로 초기에는 전염병퇴치사업에, 최근엔 의약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소렌슨 대표나 우리 보건의료계에서는 북한의 낙후된 의료관행이나 정책이 보건프로그램을 적용하는데 장애요소가 되고 있지만 지식수준이 높은 북한의사 스스로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질 수 있도록 낚시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역량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지원을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대규모 병원 및 현대화사업 지원은 어렵더라도 우선 지역사회 병원에 외과를 개설한다든가 분만실을 갖추는 지원가능한 규모의 사업들을 펼쳐 나간다면 이것이 한반도의 미래를 열어나가는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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