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보다 검진 절차 까다로워 개원가 기피 ...인력·장비 배로 드는데 수가는 똑같아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 있는 광진학교는 지적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다. 6월 27일 이곳에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이 방문했다. 학교 1층 보건실과 2층 교실은 아침부터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온 아이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오늘 진료를 맡은 사람은 소아청소년과 김중곤 교수와 간호사 등 10여 명이다.그런데 진료가 좀처럼 쉽지 않다. 특수학교 학생들이라 청진기를 대는 것도 어렵고, 귀 안을 보는 것도 여러 명의 간호사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김 교수는 아이들 진료를 하는 내내 "우리 ○○ 잘하고 있어" "아이고 잘 하는구나" "귀에 벌레 있는지 한번 볼까"라며 천천히 아이들을 다독인다.채혈하는 곳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간호사는 아이의 팔을 잡고, 또 다른 사람은 아이의 어깨를, 또 다른 사람은 노래를 부르며 시선을 끄는 등 의료진 4명이 아이 한 명의 채혈을 위해 붙잡혀 있다.1. 전국민 건강검진시대, 특수학교 검진은 누가?2.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 김계형 교수
▲ 지난 6월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이 서울 광진학교 장애학생 건강검진에 나섰다.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광진학교의 검진 풍경이 어수선하고 힘들어 보이지만 이런 모습을 부러워하는 곳이 많다. 경기지역이나 지방에 있는 특수학교는 이 같은 서비스조차 받을 수 없어서다. 2006년 학교 건강검사 규칙이 개정되면서 학교에서 해오던 검진을 의료기관을 방문해 받도록 하면서 장애 학생들은 검진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됐다. 

정부가 엄청난 비용을 검진 사업에 쏟아부으면서도 정작 검진이 절실한 장애 학생에는 관심을 쏟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국가가 검진 사업을 주도하면서 검진은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쉽게, 어디서나 받을 수 있는 서비스가 됐다. 그런데 건강한 국민의 건강을 챙기기 위한 검진이 진행되는 동안 몸이 불편한 특수학교 학생들의 검진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 

현재 전국적으로 특수학교는 총 167곳이 있다. 국립학교는 5곳, 공립학교 70곳, 사립학교는 92곳이다. 장애 영역별로 학교 수는 지적장애가 113곳(67.6%)으로 가장 많다. 지체장애 20곳(12.0%), 청각장애 15곳(9.0%), 시각장애 12곳(7.2%), 정서장애 7곳(4.2%)이 있다. 
전문가들은 장애 학생들의 건강을 더 챙겨야 할 정부가 오히려 이들을 외면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한다.

특수학교 학생 출장검진 사업을 진행하는 서울대병원 공공보건의료사업단 김계형 교수(가정의학과)는 장애 학생에게 검진이 더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김 교수는 "장애 학생들은 정상인보다 의료서비스를 받을 기회가 적고, 만성질환이 조기에 발병할 확률도 높다. 또 이차적 기능장애가 발생할 수 있어 더 복잡하고 지속적인 치료가 꼭 필요하다"고 검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장애인은 정상인보다 고혈압 발병률이 2.3배, 심혈관질환 6.5배, 관절염 3.1배, 당뇨병 3.9배, 만성통증 16.2배 높아, 일반인보다 건강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건강한 사람의 검진은 미래를 준비한다면 장애학생의 검진이 오늘의 아픔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진하겠다고 나서는 병원이 없다”

2016년 기준으로 장애 유형별 특수교육 대상자는 전체  8만 7950명 정도다. 이 중 지적장애학생이 4만 7258명(53.7%)으로 가장 많고, 지체장애학생 1만 1019명(12.5%), 자폐성장애학생 1만 985명(12.5%) 순이다. 현재 이들 특수학교 학생은 초등학교 1학년, 초등학교 4학년, 중학교 1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에 검진을 받고 있다.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장애학생들의 검진은 일반인보다 매우 어렵다. 시설, 장비, 인력 등이 몇 배로 많이 필요해서다. 그런데 2006년 학교 건강검사 규칙이 직접 병원에 가 검사를 받는 것으로 바뀌면서 특수학교 학생들의 검진은 험난해졌다. 학생들이 이동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이동한다고 해도 이들을 검진해주겠다는 병원도 많지 않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의 어려움에 놓여 있다.

특수학교 보건교사협의회 한 관계자는 "병원이 장애 학생들의 검진에 난색을 보이기 때문에 갈 곳이 없다"며 "장애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채혈을 하려면 성인남자 3~4명이 학생을 잡아야 하고, X-ray 촬영에도 자세를 잡고 있어야 하는 등 검사 자체가 매우 힘들다. 일반 병원에서 시간이 지체돼 모두 난색을 표한다"고 말했다.

또 "지적장애나 자폐성 장애 등을 가진 장애인들은 의료기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간단한 진료를 할 때도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결국 시간이 지체되고, 다른 일반 검진자를 더 받을 수 없게 되는 등의 문제로 병원들이 꺼릴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전문가들은 장애 학생들을 꺼리는 일선 병원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서울의대 김 교수는 "장애 학생 검진 수가가 정상인과 똑같다는 게 핵심"이라며 "병원이 장애학생을 검진하려면 정상인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특수의료장비가 필요할 때도 있고, 인력도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수가가 같아 병원들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병원이 이들을 검진하려면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대한민국에 그럴 수 있는 병원이 얼마나 있겠느냐"라고 반문하며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움직이기 힘든 장애학생들을 위해 출장검진을 요청하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 또한 어렵다고 토로한다. 경기도특수학교보건교사협의회 한 관계자는 "출장검진은 적게는 60명, 많게는 100명 이상이 돼야 가능하다"며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특수학교 학생들의 건강상태와 특성을 파악하지 못해 검진수가를 정상인들과 똑같이 책정했다. 탁상행정의 그 자체다. 출장검진을 받아주는 병원을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일 정도"라고 비판했다. 

일반학생과 똑같은 문진표?

장애 학생들을 고려하지 않고 지어진 의료기관의 시설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병원급 의료시설 장애인 접근성은 약 70%, 정당한 편의 제공은 30~50%인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병원급이 이 정도 수치라면 의원급은 더 열악한 상황일 것은 분명해 보인다.  

충북의대 예방의학과 박종혁 교수는 "장애인들이 병원을 이용하는 것은 너무 힘들다. 청각장애인인데 병원 내 수화통역사가 없고, 시각장애인이지만 스크린 리더기가 없어 검진 통보결과를 읽을 수 없는 일도 흔하다"며 "엘리베이터가 없거나 턱이 많은 병원도 있고, 장애인용 유방암 검진촬영기계가 없는 곳도 부지기수"라며 장애인의 의료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강한 학생과 같은 문진표를 사용한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당연히 달라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 

지적장애나 자폐성장애 아이들은 호흡기 계통의 장애가 흔하고, 뇌병변 장애나 지체장애가 있으면 근골격 질환이나 근위축 소견을 보일 수 있다고 알려졌다. 또 시각장애 아동들은 녹내장 및 망막장애가 자주 발생하고 청각장애 아이들은 호흡기질환 및 중이 질환이 잦은 것으로 조사됐다. 

김 교수는 "장애학생과 건강한 학생의 문진표는 당연히 달라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같은 문진표로 평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장애학생을 위한 검진 항목 평가와 개발이 필요하다. 또 부모의 건강지표 스크리닝이나 건강관리, 심리상담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검진수가 현실화하고 의료기관 장애 감수성 높여야”

전문가들은 장애학생 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키워드로 검진수가 현실화를 꼽는다. 병원들이 특수학교 학생을 검진하기 위해 보는 피해를 없애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병원들이 장애학생을 검진하고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일반인과 똑같은 검진수가를 정부가 인상해주는 방법도 있고, 장애인 검진을 하는 병원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제안한다.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경기도특수학교보건교사협의회 한 관계자도 특수학교 검진을 병원의 자발적 봉사활동과 교사들의 사명감에 의지하지 말고 검진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립재활병원을 지역별로 만들거나 도립의료원 담당 재활병원을 만들고 이를 해당 지자체의 장애인복지시설과 연계하는 방안도 나온다. 

의료기관의 '장애 감수성'을 높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 교수는 "장애인들에게 '풍요 속 빈곤'에 있는 의료기관의 장애 감수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장애인들이 불편함 없이 병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문제를 푸는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급성기 치료 이후 이차장애 및 합병증 발생 위험도를 고려한 의료-복지전달체계(Integrated Health and Welfare Delivery System) 모형을 개발하고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장애유형과 기간, 중증도, 위험요인 등에 따라 이차장애와 합병증의 예후 및 진료의 변이가 크고, 건강관리 계획도 달라질 가능성이 커 지금과 같은 단절적 보건복지전달체계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 건강주치의, 장애인 검진기관 및 장애인 시설 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며 "장애인의 건강을 비장애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장애인을 치료 대상자, 재활 대상자로 보는 시각을 넘어 장애인의 건강을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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