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패러다임 열어줄 열쇠는 어디에?... "예방진료에 적절한 보상 있어야"

1.새로운 패러다임 열어줄 열쇠는 어디에- 표류하는 정부 시범사업, 위료계 왜 망설이나? 2. 새장에 갇힌 주치의제도3. "지불제도 바꿔야 예방의료로 나아갈 수 있다" -정가정의원 정명관 원장
 

고령화·만성질환 치료비 증가로 의료재정 압박

정부와 의료계는 인구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숙제로 안고 있다. 치료 중심 의료에서 예방과 관리 패러다임으로 가야 하는 큰 이유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쪽은 정부다. 65세 이상 노인인구와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 증가로 늘어나는 의료비가 재정을 압박하고 있어서다. 

보건복지부는 폭발적 의료비 증가를 체감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2008년 460만 명에서 2016년 상반기 633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커져 2008년 전체 인구의 9.6%였던 것이 2009년 9.9%로 늘었고, 2010년 10.2%를 차지했다. 

만성진료비도 걱정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고혈압 등 '건강보험 만성진료비'는 지난 2011년 12조 7934억원에서 2015년 16조 7816억원으로 31.2%(3조 9882억원) 늘었다. 매년 약 1조원씩 증가하는 추세다.

"치료 중심에서 예방·관리 강화로 의료서비스 영역 넓혀야"

전문가들은 환자의 질병 위험을 낮추고 삶의 질을 높이며, 사회적 의료비 부담을 낮추려면 적극적 치료와 더불어 질병의 예방과 관리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치료를 중심으로 두되, 예방과 관리로 의료서비스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는 제언이다. 

한림의대 조정진 교수(동탄성심병원 가정의학과)는 "치료는 의료의 근본"이라며 "'치료에서 예방-관리로' 의료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기보다는, '치료와 함께 예방-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의료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차의료연구회 정명관 홍보위원(정가정의원 원장)은 패러다임을 전환했을 때 환자, 의료계, 정부 모두에게 이익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 원장은 17년째 서울 동대문에서 의원을 열고 있는 개원의다. 

정 원장은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이 발병했을 때 뛰어난 의료 기술이 있는 병원에서 잘 치료받을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고혈압이나 당뇨병을 잘 조절해 아예 합병증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고혈압 등이 발생하지 않게 하거나 적은 양의 약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미리 생활습관을 교정한다면, 환자의 삶이 더 편안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료계와 정부에도 득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정 원장은 "눈앞에 보이는 아픈 환자만 치료한다는 근시안적 사고에서 벗어나 한 인간과 사회의 전반적 건강을 위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의료인이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진정으로 환자의 건강을 위해 일함으로써 존경받을 수 있다는 점이 의료계가 얻는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증환자를 치료하는 비용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환자를 관리할 수 있으므로 정부로서는 의료비 절감을 꾀할 수 있다"며 "정부가 예방 의료에 투자해야 하는 매력적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표류하는 정부 시범사업 의료계 왜 망설이나?

정부 만성질환 관리 시범사업 쏟아내지만 의료계는 시큰둥

복지부는 옥죄어 오는 고령화, 만성질환 진료비 증가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큰 그림을 그려왔다. 1995년 제정된 국민건강증진법이 그 첫발이다. 치료에서 예방·관리로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어 낼 방법으로, 정부는 만성질환 관리 강화에 방점을 찍었다.

2007년 고혈압, 당뇨병 환자를 관리하기 위한 '고혈압 당뇨병 등록사업'을 시작으로 2012년에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을 계속 치료하는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도'에 돌입했다. 

또 2014년에는 의원급 만성질환관리제도와 흡사한 지역사회 일차의료 시범사업을 선보였고, 지난해부터 올해까지는 환자 상태를 잘 아는 동네의원에 비대면 만성질환관리 방식을 도입하는 '만성질환관리수가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만성질환 예방·관리체계 강화를 위한 정부의 다양한 시도에도, 의료계의 반응은 여전히 뜨뜻미지근하다. 일부가 정부 시범사업에 참여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당장 복지부가 가려는 방향에 찬성하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대한의사협회 김형수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은 복지부가 많은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모두 미완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표준화된 모형이 없다 보니, 다수의 모델이 시도에 그치고 있다"며 "일단 시범사업을 통해 리딩그룹이 만들어진 만큼, 제도의 모형이 안정되고 주변 여건이 성숙한다면 의료계의 참여를 끌어내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1차 해결 과제는 수가

획기적 변화를 유도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대학병원 교수, 개원의 등 대부분 전문가가 치료에서 예방을 강화하는 패러다임으로 이동하는 데 필요한 일차요소로 수가를 꼽았다. 행위별 수가체계에서 환자 교육이나 상담을 하는데 수가가 없다는 것은 곧 수익의 감소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수가는 예방·관리 패러다임으로 진입하는 연료가 된다.

정가정의원 정명관 원장은 예방·관리 활동에 대한 수가 책정이 필수요소라고 했고, 의료정책연구소 김형수 실장도 의사가 환자에게 쏟은 시간만큼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김 실장은 "의사가 한 사람을 10분씩 만나도 병원 운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한 달에 5000원씩 두 번 보는 게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씩 10분 만나 1만 원을 받고 환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렇게 안 되니까 병원들이 자꾸 환자를 다시 오게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것은 타이틀을 붙이기 나름이지만 의사가 환자를 충분히 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그 시간에 맞게 보상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복지부의 역할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결국 같은 돈을 지급하되 그 돈을 박리다매하는 데 뿌릴 것이냐, 아니면 의사가 환자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는 데 줄 것이냐 하는 문제"라며 "같은 비용이 소요된다면 후자일 때 환자가 충분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작업이지만 이런 지향성에 사회적 합의가 된다면 또 다른 제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의사의 적정수입에 관한 사회적 합의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게 김 실장의 생각이다. 현재 의사에게 가는 비용 수준이 적절한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 의사의 지식재산권과 노동에 대한 가치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점이 저수가와 박리다매식 진료로 이어졌다는 판단에서다.  

김 실장은 "의사들은 비용이 적다고 할 것이고, 환자들은 지금도 많다고 반박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의료행위에 대한 가치평가가 제대로 이뤄질 때 의사가 환자를 충분히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고, 그 시간에 맞게 보상하는 시스템이 마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사들이 가지 않았던 길 

정 원장은 의료계가 예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지 못하는 이유를 '경험'에서 찾았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의사와 병원들은 아파서 병원을 찾는 환자 치료에 주력해 왔기 때문에 질병 예방을 해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 정가정의원 정명관 원장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이 흐름을 돌리기 위해서는 적절한 유인책이 필요하다는 해법을 냈다. 
정 원장은 "그동안 의료계는 자영업자처럼 성장해 왔다"며 "치료를 하면 수익이 생기지만, 예방활동을 할 때는 수익이 감소한다. 결국 질병을 예방할 동기가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가톨릭의대 이재호 교수(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는 정부가 의료인의 치료 행위는 보장하면서, 예방 행위는 별도로 보장하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또 정부가 안보, 경제, 복지 등의 문제를 우선순위에 뒀기 때문에 보건의료가 정치인 관심 순위에서 밀렸다고 꼬집었다. 

이 교수는 "정부가 보건의료를 산업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거나 개인이 능력껏 알아서 해결하는 분야로 방임했다"며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이 사회과학적 진실보다는 여론을 추구해 왔다"고 지적했다.

"수가 책정, 만사형통 아니다" 

일각에서는 수가가 '만능키'일 수는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구조적 문제가 그대로 존재하는데, 수가 문제만을 해결한다고 의사들이 움직일 것이라 보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는 지적이다. 

정 원장은 병원의 아이러니를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 원장은 "환자가 늘면 수익이 늘고, 반대로 환자가 감소하면 수익이 줄어 의사가 예방활동을 마냥 좋아할 수 없다는 것이 아픈 현실"이라며 "의사들이 예방의료에 주력할 동기가 2% 부족하다. 환자가 감소해도 병원 수입이 줄지 않도록 하는 구조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이를 해결하려면 지불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게 정 원장의 생각이다. 인두제나 지역의료비총량제 등으로 지불제도를 개편해 환자가 줄더라도 병원 수익이 감소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이 교수는 더 단호한 태도를 보인다. 
이 교수는 "정부가 예방에 대한 수가를 보전해 주는 것은 현행 행위별수가제 하에서는 매우 제한적이어서 '삽질'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며 "수가 인상이나 신설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보건의료를 산업 또는 비즈니스로 보는 시장주의를 배척해야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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