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혈관 약물 `바이딜` 흑인타깃 마케팅

특정 인종대상 첫사례…FDA 승인

 최근 일련의 연구에서 인종 또는 성별에 따른 약물효과 및 질환특성의 차이가 보고되면서, 이들 인자를 고려한 맞춤약물의 출현이 제약시장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지난 16일 미국식품의약국(FDA) 자문위는 한 제약업체가 개발한 심혈관 약물에 대해 흑인(아프리카계 미국인) 심부전 환자의 치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을 권고했다. FDA가 일주일만에 자문위 권고를 받아들여 승인을 결정함에 따라, 바이딜(BiDil)이라는 제품명으로 시판될 이 약물은 특정 인종을 대상으로 한 맞춤약의 첫 사례가 됐다.
 물론, 처음부터 인종별 타깃약물을 목표로 신약이 개발된 사례는 아직 없다. 산화질소(nitric oxide) 생성을 촉진해 심부전을 치료하는 바이딜은 전체 심혈관시장을 타깃으로 개발됐다. 하지만 임상단계에서 흑인 환자군에서의 뚜렷한 효과를 제외하고는 미미한 성과로 FDA 승인이 거부되자, 개발사 측은 개발계획을 전면 수정해 흑인만을 대상으로 임상에 돌입했다.
 자문위 승인권고의 근거가 된 임상시험에서는 바이딜군과 위약군의 심부전으로 인한 입원율이 16.2%와 24.4%로 유의한 차이를 보였으며, 사망률은 6.2%와 10.2%의 격차를 드러냈다.
 이같이 임상시험 과정에서 종종 발견되는 인종간 약물효과의 차이가 신약개발 목표의 전면적인 수정 또는 기존 약물의 마케팅 전략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과거 서구 선진국 다국적제약사를 중심으로 진행돼 온 임상시험의 주요 대상은 백인·남성 그룹이었다. 하지만, 아프리카계·아시아계·라틴계 등의 소수인종이나 여성인구의 임상시험 참여폭이 확대되면서 인종간·성별간 약물효과의 차이와 이를 고려한 약물개발의 필요성이 점차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아스피린의 경우, 지난 3월 미국심장학회(ACC) 학술대회서 발표된 임상시험에서 45세 이상 여성의 뇌졸중 위험을 줄여주는 반면 심장발작 또는 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예방에는 유의한 이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는 뇌졸중 보다는 심장발작 예방에 더 큰 효과를 보이는 남성의 경우와 상반되는 결과다.
 한편, 최근 인종별 약효차이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약물은 항암제 이레사다. 폐암환자에 대한 생존효과를 검증한 ISEL(IRESSA Survival Evaluation in Lung Cancer) 연구에서 이레사는 위약군과 비교해 전체 환자군에서 유의한 생존기간 향상을 입증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어 발표된 동연구의 하위그룹 분석에서는 동양계 환자에서 4개월 이상의 생존기간 연장효과가 확인됐다.
 일본인 대상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70%의 환자에서 종양이 축소되거나 안정화되는 것은 물론 1년 생존율 환자가 57%에 달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이레사를 아시아 브랜드로 집중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최근 FDA로부터 이레사의 미국내 사용을 엄격히 제한하는 라벨변경을 승인받은 사(社)측으로서는 아시아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마케팅 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심혈관질환 극복의 전환점으로 불리고 있는 ACE억제제도 아직 명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흑인에게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항고혈압제 사용환자 총 3만3000명 대상의 연구를 분석한 결과, 아프리카계 환자들의 ACE억제제 반응률이 낮게 조사됐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계 의료 전문가들은 바이딜의 조속한 승인을 촉구해왔다.
 인종간 약효차이에 대한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하위그룹 분석만이 아닌 특정 인종을 대상으로 약물효과를 검증하는 임상시험 사례도 늘고 있다. 최근 흑인만을 대상으로 실시된 고지혈증 치료제 크레스토와 알츠하이머질환 치료제 아리셉트의 임상연구에서는 이들 약물이 흑인들에게 효과적인 것으로 확인됐다.
 ARB계 항고혈압제 디오반의 장기치료 효과를 검증한 `VALUE(Valsartan Antihypertensive Long-term Use Evaluation)` 연구의 하위그룹 분석에서도 아시아인이 ARB 약제로부터 특별한 이점을 얻을 수 있다는 가설과 함께 추가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이상돈 기자 sdlee@kimsonl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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