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of evidence 중요 ... "종양내과 의사 역할 중요"

▲ 28일 고가항암신약의 재정독성 해결방안 포럼이 서울대병원에서 열렸다. ⓒ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기적의 신약, 혁신적 신약 등으로 불리며 암환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새로 나오는 고가 항암신약. 매력적인 홍보 문구처럼 과연 달콤하기만 할까? 

최근 암환자가 약값을 지불하지 못해 처방 용량을 줄이거나 용법을 바꾸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더 나아가 개인파산하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 새롭게 등장하는 고가 항암신약의 명암을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재정독성이란?  

고가 항암신약이 최근 주목받는 이유는 '재정독성(Financial Toxicity)' 때문이다. 
재정독성은 2013년 미국 듀크대학 S. Yousuf Zafar 교수가 사용하기 시작한 용어로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가 겪는 재정 문제를 항암제의 물리적 독성에 비유한 것이다. 항암신약 가격이 너무 비싸 환자가 제대로 사용할 수 없고, 국가의 보건의료 재정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는 뜻이다. 

현재 글로벌 항암제 마켓 규모는 현재 1000억 달러(약 114조)이고 오는 2020년에는 1500달러(약 171조)를 넘어설 것으로 조사됐다. 2010 ~2020년 전체 암 치료비용은 26% 정도로 이중 항암제 비용은 50%를 넘어서고 있다. 신약 평균 출시 가격도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10년마다 증가했다. 1인당 국민소득을 고려하면 개발도상국에서는 구입할 수 없는 가격인 상황이다. 

26일 서울대병원 암연구소에서 열린 '고가 항암 신약의 재정독성 해결방안' 포럼에서 암정복추진기획단 김흥태 단장은 현재 항암제의 가장 큰 부작용은 재정독성이라며, 항암제 가격 문제는 환자와 의사가 직면한 전례 없는 도전이고, 특별한 대책이 필요한 전 세계적 이슈라고 우려했다. 

▲ 암정복추진단 김흥태 단장

또 "지난해 한 연구(J Natl Cancer Inst (2016) 108(5): djv370 )를 보면 고가 항암제로 인한 개인파산 증가는 2.65배인데 사망위험증가는 HR 1.79일 정도"라며 "경구항암제 포기하는 비율도 저소득층 환자에게서 HR 4.46이다"라고 걱정했다.

 단장은 "국민 건강시스템을 통해 환자에게 모든 새로운 항암제를 제공할 수 있는 국가는 없고, 일부 선진국조차도 새로 승인된 항암제의 절반 미만을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항암제 비용는 계속 증가할 것이고 세계 경제가 항암제 비용을 지속적으로 지불할 수 없는 것은 시간 문제다. 또 1개의 신약항암제에 전체 건강관리 비용의 약 18%를 사용하는 불합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항암제 비용도 급증해 건강보험재정을 위협하는 상황이 됐다. 암환자의 1인당 항암제 연간 투약비용은 5년 사이 약 33% 증가했다. 2010~2011년 항암제를 투여받은 인원은 67만 2626명으로 청구 금액은 1,4241억원이고, 1인당 청구금액은 211만 7184원 이다.

2015~2016년 사이에는 금액이 훌쩍 증가했다. 투여받은 인원은 68만 6396명인데, 청구금액은 1,9360억원, 1인당 청구금액은 282만 0484원으로 뛰어올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관실 이병일 실장은 "신약은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심의 품목이 감소하고 있지만, 항암제는 증가하는 추이"라며 "신약개발이 항암, 희귀질환에 집중된느 추세 등이 원인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항암신약, 비싼만큼 효과는 있나? 

전문가들은 고가의 항암신약이 가격만큼의 효과를 발휘하느냐에도 문제를 제기한다. 

고가 항암신약이 암환자 생존기간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논문들이 하나 둘 발표되고 있다. 생각보다 신통치 않은 실력이다.

2005년 EMA 자료를 보면 10년 동안 새로 허가된 14개의 항암제는 생존기간을 1.2개월 연장했고, FDA도 2002~2014년에 새로 허가된 48개 항암제도 생존기간을 2.1개월 연장하는 것에 그쳤다. 

김 단장은 "2004년 메타분석 자료를 보면 고환암, 호지킨림프종, 난소암, 폐암 등에 대한 5년 생존율이 2.3%일정도로 생존기간 연장 효과는 미미하다"며 "항암제가 암환자 5년 생존율 증가에 기여하는 비율은 약 20%다"라고 말했다. 

또 "2002년~2012년 연속적으로 승인된 71건의 항암제 분석 생존기간과 무진행생존율의 개선은 각각 2.1개월, 2.3개월"이었다며 "2014년~2016년 47건의 FDA가 승인한 항암제를 분석했을 때 ASCO 기준으로 의미 있는 임상적 이점을 지닌 약제는 9건(19%) 뿐이었다"고 말했다. 

▲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허대석 교수

일각에서는 제약사가 주장하는 임상시험의 효과가 임상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의대 종양내과 허대석 교수는 제약사들이 임상에서 나타났다고 주장하는 통계적 유의성이 임상적 유의성으로까지 나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비소세포암치료제 엘로티닙을 그 예로 들었다. 

허 교수는 "엘로티닙은 환자의 생명을 0.46개월 연장시켰다. 그럼에도 제약사는 통계적 유의성이 있다고 발표했고, 미국식품의약국은 이를 허가했다"며 "영국이나 스웨덴,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은 이 약의 급여를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 약을 급여결정했다"고 말했다.

또 "우리 정부는 엘로티닙처럼 근거기준이 낮음에도 급여를 해주고 있고,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이마니닙 등 근거기준이 높은 약은 급여를 해주지 않고 있다"며 "비용 효과, 합리성 등에서 모두 떨어지는 결정을 하고 있다. 적절한 조치인지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종양내과 의사 역할 중요"

가격이 비싼 항암신약을 둘러싼 논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등 외국에서도 한창이다. 

미국은 '의약품 가격 투명성법'을 제안한 상태로 알려졌다. 제약사들이 비용이 많이 든다고 주장하는 R&D 비용이나, 제조, 마케팅 비용 등을 공개해 약가를 떨어뜨리겠다는 것이다. 또 오리지날의 80~85% 저렴한 제네릭과 바이오시밀러 약물을 신속승인으로 바꾸고, 특허기간을 평균 14.3년에서 10년으로 특허기간을 축소해 항암제를 떨어뜨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고가의 항암제 가격을 떨어뜨리려는 여러 아이디어가 정부, 제약사, 의료계를 축으로 논의되고 있다. 

김 단장은 "제약사들은 신약 R&D에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비쌀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마케팅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또 이익도 22% 이상 추구하고 있다"며 "제약사들이 치료 결과 개선과 거의 상관관계가 없음에도 항암제 가격을 비싸게 받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항암신약 급여의 합리적인 결정을 위해 의료자원 분배를 공정하게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허 교수는 "한정돼 있는 의료자원을 암환자 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에게도  공정하게 분배하려면 Level of evidence, ICER 등의 경제성 평가, 정책 투명성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현재 낭비되는 요인이 어떤 것인지 재평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의료진의 전문성을 고려한 적용이 필요하다"며 "의협은 모든 진료과 의사가 동일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래서 비싼 항암제가 급여가 되면 치과의사는 물론 모든 의사가 사용할 수 있다. 앞으로는 의료진의 전문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의사의 역할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 많은 종양내과 의사는 고가의 항암제를 썼을 때 생존을 1개월 정도 밖에는 연장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지 않다. 또 80%에서 다양한 부작용이 생긴다는 위험도 자세히 설명하지 않다는 비판이다. 따라서 앞으로 종양내과 의사들도 항암제 치료를 결정할 때 충분한 설명에 근거한 사전동의(Informed Consent)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서울의대 김윤 교수도 종양내과 의사의 역할을 중요하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환자가 중요한 결정을 하는 데는 종양내과 의사의 역할이 제도를 바꾸는 것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며 "환자에게 어떤 약을 처방할 것인지 등에 대한 결정을 의사가 잘 설명하는 것이 환자의 아웃컴이나 비용에 미치는 영향이 커 의사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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