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선혜 기자

대한고혈압학회가 올해 제시한 비전 중 가장 힘을 쏟고 있는 것이 '가정혈압 정착'이다. 가정혈압이 진료실 혈압, 24시간 활동혈압보다 재현성이 높고 장기적으로 심혈관질환 예후를 측정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서 가정혈압을 측정하는 고혈압 환자는 3명 중 1명 정도로, 가정혈압 인지도는 미미한 수준이다. 이에 학회는 범국민적으로 가정혈압의 중요성을 알리고 가정혈압을 정착하기 위해 지난 5월 '가정혈압 포럼'을 발족하는 등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하지만 진료 현장에서는 가정혈압 정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의료진이 적지 않다. 이들은 가정혈압의 중요성은 알고 있지만 가정혈압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의료 환경인지에 대해 의문을 표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대학병원 교수는 "가정혈압이 중요하다는 점은 알고 있지만 환자들이 가정에서 정확한 방법으로 혈압을 측정했는지 확인하기 어렵고, 수기로 적어온 혈압을 믿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고 토로했다.

때문에 환자들이 가정혈압을 적어와 내원하면 의료진 앞에서 혈압을 다시 측정하도록 해 측정 자세부터 혈압 수치까지 재확인하고 있다고.

또 다른 대학병원 교수는 "학회에서 가정혈압 교육자료를 제작해 배포하고 있지만 환자가 측정 전 지켜야 할 사항이 많고 측정법도 간단하지 않다"며 "실제로 환자들이 교육자료에 따라 가정혈압을 제대로 측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의료진의 우려는 지난해 세계고혈압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고혈압 환자의 가정혈압 관리에 대한 한국 의료진 인식조사 결과'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의료진 중 59%는 가정혈압에 대한 국민 인식 향상이 필요하다고 답하면서 92%는 가정혈압 교육을 위한 별도 프로그램이나 전담 인력이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즉 진료 현장에서 환자에게 가정혈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교육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학회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정혈압 관련 교육과 함께 의료진과 환자들이 최신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정기적인 포럼을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가정혈압 포럼이 이제 막 첫발을 뗀 단계이기에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을 통해 성과를 이뤄낼지는 미지수다.

가정혈압이 고혈압 관리의 핵심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의료 환경이 조성되지 않는다면 진료 현장에서는 오히려 혼란만 일어나게 될 것이다.

학회가 가정혈압 정착을 주요 아젠다로 내건 만큼 교육·홍보사업과 함께 가정혈압이 임상에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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