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 부모 죽음 겪은 이들 자살 시도위험 2~5배 높아

올해는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7년이 되는 해다. 1950년부터 4년에 걸친 전쟁으로 약 100만 명이 죽었고, 600만 명 이상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홍진교수

해마다 6월이 되면 참전용사와 피란민 등 전쟁을 기억하는 이들의 애끊는 이야기들이 미디어를 통해 전해진다.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한국전쟁이란 역사책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옛날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노인 10명 중 3명에게 한국전쟁은 부모를 잃은 경험이다.

지난 2006년과 2011년 진행된 전국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결과 중 1만 2532명을 심층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어린 시절 부모가 사망한 비율이 세대 간 큰 차이를 보였다. 

19세 전에 부모가 사망한 경우를 조사해 보니 20대는 6.7%인데 비해 60대 이상은 28.7%에 달했다. 시기적으로는 한국전쟁 전후 아버지가 사망한 경우가 많았다.

어린 시절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충격적 사건은 부모의 사망일 것이다. 19세 전에 부모를 잃은 이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니 우울증 위험이 약 4배, 알코올 중독이 3배, 불안장애 위험이 4배 증가했다. 

주목할 것은 유년기인 5~9세에 부모의 죽음을 겪은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자살 시도 위험이 2~5배 정도 높았다. 10세 이후 부모가 세상을 떠난 이들은 상대적으로 자살시도 위험이 낮게 나타났다. 

사람이 전쟁이나 고문, 자연재해, 사고 같은 큰 사건을 겪은 뒤에는 공포감이나 불안, 우울증이나 불면증을 경험한다. 사건이 끝나더라도 악몽이나 이유 없는 불안은 끝나지 않는다. 마음 속 자신과의 전쟁으로 계속된다. 즉, 흔히 말하는 '트라우마'가 되는 것이다. 

전쟁이나 부모의 죽음처럼 큰 트라우마를 경험하면 교감신경이 흥분해 각성상태가 지속된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은 긴장이 사라지지 않는 상태가 된다. 

이 상태가 적절하게 해소되지 못하면 부신에서 분비되는 스트레스 호르몬 '코티졸'이 과도하게 늘어난 상태가 지속된다. 특히 유년기인 5~9세에 스트레스 호르몬이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뇌 발달에 악영향을 미친다. 

기억을 담당하는 부위인 해마가 위축되고, 뇌를 연결하는 뇌량도 감소한다. 이로 인해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충동 조절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발생한다.

앞서 소개했듯 우리나라 노인 10명 중 3명은 어린 시절 전쟁에서 부모의 사망이라는 상실을 경험했다. 

나이가 들면서 배우자와 가족의 죽음으로 상실을 재경험한다. 전쟁은 70년 전 일이 됐지만, 기억 저편의 트라우마는 수많은 노인들이 오늘도 겪는 현재 진행형이다. 

트라우마를 겪었더라도 적절한 상담과 치료를 받고 주위의 지지와 도움을 받는다면 정신건강의 문제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노인들이 주변 사람의 죽음을 겪던 때는 우리 사회가 그런 도움을 줄만한 여력이 없었다. 그들은 스스로 감내해야만 했고, 결국 마음 속 트라우마가 되어 남았다.

상실의 고통을 극복하고 세대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노인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배제되고 고립된 노인은 트라우마가 강화돼 우울감이나 알코올 중독에 빠질 수 있다.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를 연결하고, 노인과 노인을 연결하고, 노인과 지역사회를 연결해야 한다. 

이 '연결성(Connectedness)'이 그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것이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큰 숙제인 노인 자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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