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이지만 실질적인 적용 위해서는 복잡한 측정법·보고 비뚤림 등 해결해야

▲ 26일 대한고혈압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가톨릭의대 조은주 교수(성바오로병원 순환기내과)는 가정혈압이 임상에 정착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지적했다.대한고혈압학회는 2017년 새로운 비전으로 '가정혈압' 정착을 제시하고 나섰다. 더 많은 국민이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가정혈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보급하겠다는 의지다.이는 최근 학회가 전국 고혈압 환자 1000명의 혈압측정 실태 조사를 토대로 마련된 비전으로, 결과에 의하면 고혈압 환자 3명 중 1명만이 가정혈압을 측정한다고 답했다.학회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발걸음으로 26일 춘계학술대회에서 '가정혈압 포럼' 발족식을 가지는 등 가정혈압 정착에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하지만 가정혈압이 고혈압 관리의 '이상적인' 혈압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에 가정혈압이 임상에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서 해결해야 할 문제점을 짚어봤다.

'복잡한 측정법' 해결 위해 교육자료 등 배포
미국 내 구비는 '3곳 중 1곳'에 머물러

가정혈압의 문제점 중 하나는 측정법이 복잡하다는 것이다. 2015년 유럽심장학회(ESC)가 제시한 가정혈압 측정법은 △모니터링 전 의료진에게 측정법에 대한 설명 듣기 △카페인 금지 △흡연 금지 △혈압 측정 전 5분간 휴식 △혈압 측정 동안 대화 금지 △소변 후 측정 △안정 △같은 팔을 테이블 등 평평한 바닥에 댄 상태에서 측정 △5~7일 동안 매일 2번씩 3회 측정으로, 큰 틀에서 총 9가지다.

대한고혈압학회가 제시하는 가정혈압 측정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확한 혈압을 확인하기 위해 아침 2회, 저녁 2회 측정을 권고하면서 측정 시기에 따른 주의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또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장소에서 혈압 측정을 준비해야 하며 올바른 위치에 커프를 착용해야 하는 등 환자 스스로가 지켜야 할 사항이 많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미국심장협회(AHA), 대한고혈압학회 등은 가정혈압 측정법을 자세히 설명한 교육자료 및 동영상을 배포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내에서 이러한 교육자료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 의료기관은 많지 않은 상황. 미국 1차 의료기관 321곳 중 미국예방서비스테스크포스(USPSTF)가 권고하는 가정혈압 측정법 교육자료를 구비하고 있는 곳은 36.6%로, 3곳 중 1곳에 불과하다.

게다가 종합병원과 연계된 개인병원 중 진료지침에서 권고하는 가정혈압 측정법을 따르는 곳은 36.4%였지만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개인병원에서는 10.5%에 머물렀다(P<0.01)(J Am Board Fam Med 2017;30(2):170-177).

때문에 일각에서는 가정혈압의 신뢰성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낸다. 2010년과 2014년에 가정혈압 측정법을 제대로 지켰는지를 조사한 단면연구 결과에 따르면, 신체 자세와 팔 위치를 정확하게 지킨 환자는 두 해 모두 절반 이상이었다. 그러나 이를 제외한 측정 전 준비사항 및 혈압 측정 전 5분간 휴식 등을 지킨 환자는 2010년과 2014년 모두 40%에도 미치지 못했다(Can J Cardiol 2015;31(5):658-663).

심혈관질환 예측에 가정혈압이 우수하다? '연구 부족'

이와 함께 심혈관질환 예측에 가정혈압이 24시간 활동혈압보다 우월한지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가정혈압으로 심혈관질환 및 사망 관련 예후를 예측하고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은 명백하지만 24시간 활동혈압보다 우수하다고 단정 짓기에는 연구가 많지 않다.

2015년까지 24시간 활동혈압과 가정혈압의 심혈관질환 예측 정도를 직접 비교한 연구는 총 7개. 이 중 가정혈압과 24시간 활동혈압을 각각 보정해 비교한 세 가지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가정에서 측정한 수축기혈압이 24시간 활동 수축기혈압보다 심혈관계 관련 사건 예측에 우월하다는 연구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가정에서 측정한 이완기혈압이 24시간 활동 이완기혈압보다 심혈관계 관련 사건 예측에 우월하다는 연구는 한 건이었으며, 나머지 두 연구는 동등 또는 24시간 활동 이완기혈압이 예측에 더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J Am Soc Hypertens 2016;10(3):224-234.e17).

가톨릭의대 조은주 교수(성바오로병원 순환기내과)는 "두 혈압을 직접 비교한 연구가 적기 때문에 가정혈압이 24시간 활동혈압보다 심혈관질환 예측에 좋다고 결론 내릴 수 없지만, 24시간 활동혈압이 가정혈압보다 좋지 않다고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가정혈압 수기 작성 시 '보고 비뚤림' 우려

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보고 비뚤림(reporting bias)'을 최소화하는 것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보고 비뚤림이란, 유리하고 바람직한 결과는 보고하면서 그렇지 않은 결과는 보고하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호손 효과(Hawthorne effect)'라 부른다.

즉 고혈압 환자들이 가정혈압 측정 결과를 수기로 작성할 경우 의도적으로 혈압을 잘못 기재할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스위스 바젤 대학병원 Nordmann A 교수팀이 환자가 직접 보고한 가정혈압과 실제 가정혈압 또는 활동혈압과의 일치도를 비교한 결과, 15% 환자는 두 혈압 차이가 5mmHg 이상으로 나타났다(Blood Press 2000;9(4):200-205).

Nordmann 교수는 논문을 통해 "가정혈압을 정확하게 보고하지 않으면서 적절하지 않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환자에서 더 주의해야 한다"면서 "활동혈압 또는 자동으로 측정 및 저장되는 가정혈압이 직접 보고하는 가정혈압보다 더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이에 2008년 유럽고혈압학회(ESH) 합의문에서는 혈압을 정확하게 보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수기로 작성한 가정혈압은 부정확 또는 판독이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어 2013년 ESH 가이드라인에서는 환자가 부정확한 혈압을 작성한 것으로 판단되면 치료 결정에 반영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하면서, 환자는 메모리 저장이 되는 기기를 사용할 것을 주문했다.

"가정혈압 이상적이지만 국내 적용에는 '시기상조'"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조 교수는 "국내 가정혈압은 이상적이면서 분명 좋은 점이 있지만, 실질적인 적용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아직 활동혈압보다 가정혈압을 적용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본다"며 "가정혈압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도록 돕는 의료지원팀이 구성돼야 한다. 아울러 임상에서는 환자가 의료진 없이 스스로 혈압을 측정하고 마음대로 조절하는 점을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가정혈압의 문제점에 동의하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서울의대 김용진 교수(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는 "가정혈압은 자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에 재연성이 높고 그 결과를 치료에 반영할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면서 "그러나 가정혈압 측정 후 환자들이 혈압을 정확하게 작성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에, 가정혈압 측정 후 바로 기록 및 저장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등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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