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입자, 보장성 강화 대비 철저한 지출관리 주문..."책임 다하지 않은채 권리만 요구"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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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과 각 공급자단체 간 수가협상이 올해도 난항을 겪고 있다.

가입자 측의 요구를 받은 공단이 곳간을 틀어쥔 탓인데, 적정수가의 훈풍은커녕 당장 요양기관의 정상적인 운영이 가능할지 걱정해야 하는 수준이라는 게 다수 공급자 단체의 전언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6일과 29일 양일간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약사회와 잇달아 만나 2018년 수가결정을 위한 3차 협상을 가졌다.

3차 협상은 가입자 측을 대리한 공단과 공급자단체가 본격적인 수싸움을 벌이는 단계다. 각자가 희망하는 수가조정율을 제시하고 치열한 논리대결을 통해 간극을 좁혀나간다. 

그러나 올해는 '대화가 안된다'는 게 다수 공급자단체의 설명이다. 공단 협상팀이 제시한 수치와 공급자 입장에 간극이 워낙 큰데다, 예년과 달리 추가적인 재정확보도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 협상이 돌파구를 찾기가 어렵다는 전언이다.

대한약사회 조양연 보험위원장은 "3차 협상자리에서 수치를 교환했지만 양측의 격차가 매우 컸다"며 "재정소위가 엄격하고도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어 공단도 협상의 여지가 많지 않다고 하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대한한의사협회 김태호 약무이사 또한 "가입자단체의 입장이 완강하다고 한다"며 최근 5년내 가장 힘든 협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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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협상에서 공단은 지난 24일 있었던 재정운영위원회 소위원회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가입자 측의 입장을 공급자 측에 적극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급자단체들의 전언을 종합하자면, 가입자 측은 건보료 부과체계의 개편과 향후 있을 보장성 강화정책, 메르스 사태 이후 회복된 진료비 증가율 등 몇가지 이유를 들어 '철통수비' 기조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첫째는 내년 7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건보료 부과체계 개편이다.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으로 당장 내년 8000억원 가량의 수입 감소가 예상되는 만큼, 지출관리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논리다.

둘째는 보장성 강화다. 새 정부 공약사항인 비급여 전면 급여와화 보편적 보장성 확대 등의 이행을 위해서는 막대한 재정투입이 불가피한 만큼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대한치과의사협회 김수진 보험이사는 "가입자 측이 보장성 강화 정책에 대한 대비를 강조했다고 한다. 보장성 강화로 가입자의 보험료가 인상되는 것을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라고 상황을 전했다. 

메르스 사태 이후 회복된 진료비 증가율도 공급자측의 발못을 잡고 있다. 가입자측은 지난해 진료비 증가율이 11.4% 가량 급증했다는 점을 들어, 지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더해 공단 환산지수 연구결과에서 수가 인하요인이 더 큰 것으로 분석됐다는 점도, 가입자측 논리에 힘을 실었다. 기계적으로 반복되던 수가인상의 틀에서 벗고, 근거 중심 협상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수가협상단. 사진 왼쪽부터 장수목 급여보장실 본부장, 장미승 급여상임이사, 조용기 보험급여실장, 이종남 수가급여부장.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공급자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대로라면 (협상결렬을 선언하고) 건정심에 갈 일만 남았다"는 자조 섞인 비판도 나온다. 

한 공급자단체 관계자는 "철저히 가입자 입장만을 고려한 논리"라며 "건강보험 제도 운영의 또 다른 축으로서, 더 이상 희생만을 감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건보 수지균형을 이야기 하지만, 건강보험이 흑자일 때는 침묵으로 일관했던 것이 가입자 측"이라며 "재정적자가 걱정되니 진료비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 그간 수가협상에서 보여진 가입자측의 지속적이고도 유일한 논리"라고 비판했다. 

가입자 측이 책임은 다하지 않은 채, 권리만을 주장하고 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나왔다.

또 다른 공급자단체 관계자는 "보험료 인상없는 보장성 강화는 있을 수 없다"며 "새 정부 보장성 강화계획에 맞춰 재정 지출은 줄여야 한다면서, 보험료 인상은 경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자기모순이다. 보장성 강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보험료 인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올바로 알리는 일이 시민사회가 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부과체계에 따른 재정손실을 오로지 공급자 측에만 전가하는 것도 불합리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개원가 관계자는 "부과체계 개선은 사회적 합의와 정책적 결정에 의해 이뤄진 일"이라며 "그에 따른 손실 또한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것이지, 공급자에게 돌아갈 몫을 제대로 주지 않는 것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30일 성명을 내어 지출 억제에 초점을 둔 깜깜이 협상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대개협은 "곳간에 20조원이라는 재정이 남아도는데도 공단은 부과체계 개편으로 적자가 예상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며 "건보공단이 의원의 경영 현실을 제대로 파악이나 해보려고 했는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이어 "16년전 건강보험재정 파탄시 건보재정을 살린 것은 의료기관의 희생이었다"며 "재정이 파탈 날 땐 협조하자더니 사상 최대 흑자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는 공단의 태도를 개탄한다"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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