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백신 원료 전량 수입 의존…대유행땐 치명적/세계적 수준 우리 BT기술로 과점 국가 극복 가능
지난해 세계보건기구(WHO)는 항바이러스제 오셀타미비르에 조류독감 바이러스 증식 억제효과가 있다는 발표와 함께, H5N1 바이러스의 대유행에 대비해 이 약물의 사전비축을 각국에 권고했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대유행 독감이 창궐한다면 H5N1 바이러스의 항원 대변이에서 기인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있다. 따라서, 이같은 항바이러스제가 변종에 대한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 유일한 방어수단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영국정부가 1460만명(국민 4명당 1명분) 분량의 확보계획을 발표하는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각국 보건당국은 전체인구 20% 사용선을 마지노선으로 물량주문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당량의 항바이러스제를 주문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을 뿐, 전체 비축량은 공식적으로 확인할 길이 없다.
국가전염병관리의 본산인 질병관리본부는 독감의 대유행에 대비한 적극적 대책을 마련하고있다는 언급 외에는 국가전략적으로 진행되는 항바이러스제나 백신 비축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제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대유행 독감대책과 관련해, 최근의 조류독감 발생시 우리나라의 방역·방제활동이 WHO로부터 모범사례로 꼽히는 등 철저한 대비책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신종 전염병 출현에 대비한 도상훈련을 실시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최근 수년간 독감시즌의 바이러스 유행에 성공적으로 대처해 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전국적 감시체계가 원활히 운용되고 있으며, 지난해 1800만명 분의 백신원료가 안정적으로 공급돼 감시와 예방 및 치료의 삼박자가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개도국의 현실을 감안해 볼 때 우리나라도 감시와 예방 및 치료 사이의 균형이 깨질 경우 대유행 창궐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특히, 독감백신 원료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며 분주단계에 머물고 있음은 언젠가 우리에게 치명적 타격이 될 수 있는 대목이다. 독감시즌 때마다 예방백신 물량이 충분히 확보됐는지를 확인하기에 분주하고, 그해 겨울을 안전하게 넘길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던 경험들.
지난해 영국 백신 제조업체 카이론(Chiron)에 3개월간 생산금지 조치가 내려짐으로써 미국내 독감백신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은 이로인해 패닉 직전의 혼란을 겪었다. 한시즌의 독감백신 공급부족이 이러한 파장을 가져온다면, 전세계적으로 수백만의 사망자를 야기할 펜데믹 인플루엔자 창궐시 백신공급의 불균형은 말그대로 대공황을 불러올 것이다.
고려의대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무방비 상태에서 새로운 대유행 독감에 직면하게 된다면, 유일한 방어수단인 백신은 국가 존립을 위협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충북의대 생화학교실의 최중국 교수 또한 "세계적 유행성 독감의 출현이 기정사실이라면, 국가안보 차원에서라도 정부가 백신 자체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독감백신의 정치적 역학관계와 무기개념에 휘둘리는 것은 아직 경솔한 판단이라는 지적(워싱턴 포스트 4월 26일자 사설)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과 관련된 중대사안이라면 모든 가능성을 바라보고 시간이 허락할 때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IT·BT 산업의 발전과 함께, 백신사업이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갖는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독감백신의 자체개발 및 생산능력의 미비는 R&D 부담과 과점형태의 시장구조 및 시장의 불확실성 등으로 제약사가 투자를 꺼리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김우주 교수는 아시아 시장을 본다면 백신사업이 절대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라고 역설한다. 국내업체들이 현재 과점의 주축인 선진국 거대업체와의 경쟁을 극복하고 독감백신 개발에 성공한다면, 가격 경쟁력을 갖춰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개발 초기단계 부터 아시아 시장의 리더를 목표로 타깃을 선점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자료에 따르면, 저개발국의 전염병으로 의한 사망률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WHO 등 범세계적 단체들의 백신지원이 계속돼 백신사업은 초국가적 산업의 특성을 갖는다. 백신의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공급처 보장이 안정된 수익원 확보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과점시장의 극복을 위해서는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고 있는 국내 BT 벤처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한 R&D 및 제품 파이프라인의 확대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KISTI 보고서에서는 2003년 현재 녹십자·대웅제약·동아제약 등 국내 백신 제조업체가 투자하고 있는 생물벤처기업이 22곳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또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특성에도 불구하고 백신 R&D에 있어 바이오기술 역할이 커짐에 따라, 전통적 예방백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개발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중소 제약업체들과 바이오벤처기업들의 시장참여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BT 첨단기술을 활용한 치료용 백신(암·DNA 백신)의 개발 등 틈새시장도 국내업체들이 선점할 수 있는 전략의 일환으로 인식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