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내과 필요성 증가 ... 경영진, 수익에 도움되지 않아 지원 난색, 복지부 뒷짐만

▲노인인구 증가와 함게 노년내과의 필요성이 강조되지만 논의가 전혀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고혈압, 당뇨병, 퇴행성 관절염을 동시에 앓는 노인이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받는다면 먼저 혈압약을 처방받기 위해 순환기내과에 들러야 한다. 이후 혈당 측정 및 상담을 위해 내분비내과를 거쳐 무릎 통증으로 정형외과도 찾아야 한다. 만일 이 노인 환자가 진료받는 곳이 대학병원이라면 하루에 세 가지 진료를 모두 받기란 불가능하다. 중소병원에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시스템에서 노인환자는 병원을 여러 번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하고, 의사는 그 환자가 어떤 진료를 받고 약물을 처방받는지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오래전부터 전문가들은 노인환자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노년내과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2014년 보건사회연구소가 65세 이상 노인 60.5%가 3개 이상의 복합만성질환을 갖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3개 이상의 다빈도 복합만성질환 구성을 보면 고혈압+만성요통+관절증을 동시에 보유한 경우가 전체 복합만성질환자 중 19.0%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이처럼 복합만성질환을 앓는 노인이 급증하지만 이들이 병원을 이용하는 방법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노년내과가 필요한 이유는?

노년내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림의대 윤종률 교수(동탄성심병원 노인병클리닉)는 노인환자를 통합적으로 진료한 곳과 그렇지 않은 곳에서 아웃컴의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윤 교수는 "의료진이 노인환자를 진료할 때 특성이나 노인의 약점을 파악해야 한다. 노인환자는 젊은 사람보다 비전형적 증상 즉 노인병증후군을 보이고, 치료 부작용이나 합병증도 자주 발생한다"며 "또 복합만성질환을 앓기 때문에 많은 약을 한번에 복용한다. 따라서 약물 처방을 할 때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의료진이 노인환자의 양상을 파악하고 진료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 시스템에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노인환자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국내에 노년내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아산병원이 1995년 노인클리닉으로 시작해 2009년 노년내과로 명칭을 바꿔 시동을 걸었고, 분당서울대병원이 2003년부터 노인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도 2010년 노년내과로 흐름에 가세했다.

이들 중 분당서울대병원이 운영하는 노인의료센터의 '노인포괄평가'가 눈에 띈다. 이곳에 노인환자가 방문하면 간호사, 약사, 영양사로 구성된 팀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환자가 자가 평가를 한 후 이들 전문가가 약물, 심리상태, 영양, 사회활동 등 분야별로 환자를 파악한다.

서울의대 김광일 교수(분당서울대병원 내과)는 "병원 개원 초기부터 노인포괄평가를 하기 위한 도구를 만들기 위해 항목별로 교수들이 모여 논의한 후 평가도구를 만들었다"며 "노인환자의 인지기능, 약물, 영양, 통증 등을 파악해 진료를 시작한다"고 소개했다.

▲ 분당서울대병원 노인의료센터 김광일 교수

또 "기존 방식대로 노인 환자가 여러 진료과를 돌아다니며 중복검사나 중복투약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이제 고혈압이나 당뇨병 등 질병 위주가 아니라 환자 위주로 진료를 볼 수 있도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병원 수익에 도움 안 되는 노년내과…경영진 외면

노년내과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인정됐다. 그래서 빅5 병원이라 불리는 서울아산병원이나 세브란스병원 등이 첫걸음을 내디뎠던 것. 빅5 병원이 앞서서 트렌드를 주도하면 몇 년 후엔 후발 병원들이 뒤따르는 것이 의료계 공식이라면 공식이다.

그런데 이 공식이 '노년내과'에는 통하지 않는 모양새다. 이유는 간단했다. 병원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노년내과는 찬밥 신세로 남아 있다.

▲ 노인인구 증가와 함게 노년내과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논의가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메디칼업저버 ⓒ김민수 기자

모 대학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우리 병원 노년내과는 적자는 아니다. 그 이유가 조금 슬프다. 대기업 회장이나 특실을 이용하는 노인이 많아 적자를 메우는 상황"이라며 "기본 진찰료만으로 노년내과를 운영하는 지방 대학병원은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토로했다.

울산의대 이은주 교수(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는 병원 경영진이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노년내과를 지원할 리 없다고 꼬집는다.

이 교수는 "많은 병원이 검사나 수술, 고가항암제 등을 처방해 수익이 많이 나는 암병원을 앞다퉈 만든다. 새로운 고가장비를 구입하고 24시간 가동해도 환자는 기다려야 할 정도"라며 "노년내과는 의사가 환자와 상담이나 교육을 통해 2주 입원해야 할 것을 1주로 줄여도 병원 수익에 도움이 안 된다. 분당서울대병원처럼 간호사, 약사, 영양사가 노인포괄평가를 했을 때 과연 병원이 수익을 맞출 수 있느냐는 현실적 벽을 만난다"고 아쉬움을 표한다.

또 "노년내과에 수가가 책정돼 있지 않아 적자를 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폐과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말한다.

연세의대 김창오 교수(세브란스병원 노년내과)는 병원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제도에 병원 경영진이 눈길을 줄 리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김 교수는 "현 제도 아래서는 환자가 여러 진료과를 돌아다니고,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아야 병원 수익이 난다. 그런데 노년내과에서 노인환자를 상담하고 교육하는 것은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는다"며 "환자 만족도는 물론 의료의 질, 의료계 전체 구도에서도 좋은 제도지만, 수가가 없어 병원들이 채택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노인관리료 신설이 문제 해결의 핵심"

일선 의사들은 이 문제가 오랫동안 풀리지 않는 이유로 정부의 복지부동을 꼽았다. 의료계에 책임을 떠밀고 뒷짐을 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 교수는 "노인내과 의사들이 통합진료를 하면 궁극적으로 의료비나 약제비 등을 절약할 수 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가 뜨뜻미지근한 자세를 10년 넘도록 취하고 있다"며 "복지부는 의료계가 논의해 노인세부전문의에 대한 하나된 의견을 가져오라고 한다. 핵심은 노인세부전문의제도가 아니다. 일할 곳이 없는데, 세부전문의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고 반문한다.

또 "복지부가 응급관리료를 활용해 응급의학과 의사 수가를 감소하는 위험한 상황을 넘겼듯

▲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이은주 교수

이 노인관리료를 먼저 신설해야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제언했다.

즉 수가를 만들고, 질적인 측면을 관리하자는 것. 이것이 노년내과를 운영하는 의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광일 교수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노인관리료를 신설하고 관리를 잘 하는 병원에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훨씬 이익이라고 주장한다.

김광일 교수는 "수가가 만들어지고 질관리를 잘하는 병원에 인센티브를 주면 달라질 것"이라며 "다학제진료는 물론 노인포괄평가, 약물을 줄이려는 노력도 할 것이다. 이를 통해 환자 건강관리는 물론 만족도도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노인관리료가 만들어지면 관심을 갖는 의사도 많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 교수는 "복지부가 먼저 노인관리료를 인정하면 노년내과에 관심 있는 인력이 증가할 것이다. 이후 자격증 등을 통해 인력에 대한 질 관리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며 "노인에 대한 통합진료를 할 수 있도록 복지부가 교통정리나 드라이브를 먼저 걸어줘야 이 문제가 풀릴 수 있다"고 말했다.

노인진료에 대한 수가를 인정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첫걸음이란 것에 김창오 교수도 동의한다.

김창오 교수는 "복지부가 노인관리료를 신설해 미리 투자해야 한다. 이후 질적평가를 통해 인센티브 등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며 "수가를 만들 때 다른 곳에서 빼지 말고 재원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메디칼업저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